반의사불벌죄라 적절한 공권력 개입 어려워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거제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일명 ‘거제 교제폭력 상해치사 사건’ 피해자 모친의 말이다. 지난 4월1일 경남 거제시에서 20대 A씨는 주거지에서 전 남자친구 B씨에게 폭행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유가족은 수차례 경찰 신고에도 딸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법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4년간 지속적인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친밀한 파트너’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교제폭력 문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범죄 이전에도 가해 행위가 나타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피해자 개인이 파트너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또 교제폭력을 폭행 등 반의사불벌죄로 의율하면서 피해자를 사전에 보호하기 어려운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영석)은 20대 B씨를 상해치사 등 혐의로 심리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B씨 변호인은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을 인정하고 사망에도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상해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B씨는 A씨가 전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유가족은 B씨의 폭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 모친은 지난달 1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쓴 게시물에서 “(딸이)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다”며 “경찰이 가해자의 폭력을 방관하고 부추긴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적절한 공권력 개입이 이뤄지지 못한 까닭으로 반의사불벌이 꼽힌다. 교제폭력은 폭행 등 반의사불벌이 적용되는 법률에 따라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는데, 교제폭력 특성상 피해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파트너에 대한 처벌을 구하기는 어렵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피해자에게 달려 있어 사건 접수부터 쉽지 않은 셈이다.
실제 경찰청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7만7150건이었지만 검거는 1만3939건(약 18.1%)에 그쳤다. 지난 10일 국회 입법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이 통계를 두고 “처벌불원이 원인일 수 있다”며 “피해자를 취약하게 할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교제폭력을 가정폭력처벌법에 포함하는 방법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나 보호시설·의료기관 인도 등 ‘응급조치’와 접근 금지와 유치장 혹은 구치소 유치 등 ‘긴급임시조치’까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법은 사실혼 관계나 배우자였던 사람, 친족과 같은 가족에게만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 위험 신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가정폭력 피해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가 간섭과 규제, 가족 및 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기 등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허 연구관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이해한다면 폭력 피해자 중 소수만 보호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가정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전부개정법률안 각각 1건이 계류 중이다. 두 법률안 모두 피해자 범위를 가족 외 친밀한 관계로 넓히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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