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상임위원에 김태규도 동시 임명
이사 선임 의결 최소 정족수 채워져
김동률 등 방문진 이사 여당몫 6명
13일 임기 시작 … 안형준 해임 수순
野, ‘李 법카 유용 의혹’ 고발하기로
1일 탄핵안 보고 이어 2~3일 표결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야당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을 동시에 임명하면서 ‘2인 체제’가 된 방통위는 공영방송 경영진 개편에 속전속결로 나섰다.
이 신임 위원장은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취임 첫날 곧바로 방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과 K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의결했다.
이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임명 재가 직후 대통령 임명장 수여 등 통상적인 취임 첫날 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방통위가 있는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해 오전 11시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를 통해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 회복을 강조한 그는 “불과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두 분(이동관·김홍일)의 전임 위원장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정치적 탄핵을 앞두고 방송과 통신 정책이 중단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두 분의 큰 희생이 있었다”며 “두 분 전임 위원장의 희생과 직원 여러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방통위에 부여된 책무를 최선을 다해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말 그대로 공기, 공적인 그릇으로 우리 삶에 필수적 요소”라며 “그런데 지금은 언론이 공기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건전한 사회적 공론의 장이 돼야 할 공영방송이 바로 그런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오후 5시 전체회의를 소집해 두 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했다. 이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 임명으로 방통위 의결 최소 정족수인 ‘2인 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새로 선임한 방문진 이사진은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허익범 법무법인 허브 대표변호사가 방문진 이사회 9명 중 여당 추천 몫인 6명으로 선임됐다. 나머지 3명의 방문진 이사는 야당이 추천하지 않았다. 선임된 방문진 이사들은 13일부터 3년간 직을 수행한다.
KBS 이사들도 새로 추천됐다. 서기석 KBS 이사장과 권순범 KBS 이사가 기존 이사진에서 유임된 것을 비롯해 류현순 전 한국정책방송원장, 이건 여성신문사 부사장, 이인철 변호사, 허엽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위원장, 황성욱 전 방심위 상임위원이 KBS 이사 11명 중 여당 추천 몫인 7명으로 추천됐다. 야당은 자신의 몫인 4명의 KBS 이사도 추천하지 않았다. KBS 새 이사진은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친 뒤 9월1일 3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공영방송 중 EBS 이사는 9월14일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이사 선임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현재 후보 접수만 완료한 상태다.
방통위의 여당 측 이사 6명 선임으로 방문진 이사회가 여당 우위로 바뀌면서 새 이사진의 임기가 시작되는 13일 이후 이른 시일 내에 안형준 MBC 사장에 대한 해임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안 사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반면 박민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여권 성향 이사들이 다수를 차지한 뒤인 지난 11월 취임했기 때문에 별도의 교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의 광속 행보에 야당은 이날 대전 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과 관련해 이 위원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위원장에 대해 업무상 배임·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이 위원장 임명에 대해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말로 표현이 힘들 만큼 최악의 장관급 인사”라고 비판했다.
고발뿐 아니라 탄핵 절차에도 시동을 걸었다. 과방위 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이) 심의 의결해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고 추천하거나 방통위 차원에서 방문진 이사를 임명할 경우 국회법 절차에 따라 방통위원장에 대해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현재 ‘2인 체제’인 방통위의 의결 등 절차에 대해 탄핵 사유라는 게 야당 입장이다. 절차가 진행될 경우 당장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보고돼 2일 또는 3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에 야당이 탄핵을 추진한 이동관·김홍일 방통위원장,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의 경우 탄핵소추안 가결 시 직무정지가 되는 걸 고려해 표결 전 자진 사퇴한 바 있다.
◆“탄핵안 헌재 판단 받아보자”… 역공 노리는 與
여권에서는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면 자진사퇴 대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는 정면 돌파 카드가 유력시된다. 탄핵과 자진사퇴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헌재 판단을 바탕으로 역공을 노리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31일 통화에서 “탄핵을 또 하게 되면, 이번에는 헌재 결정을 기다려보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며 “정부로서도 고민되는 지점인데, 민주당이 먼저 한 일이지만 언제까지 자진사퇴와 임명을 반복할 것이냐 하는 점에서 차라리 이번에 결론을 짓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의 배경에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진 선임을 의결하고 나면 당장 시급한 현안이 없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에서도 이 위원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에서 각하 또는 기각 판단을 받아서 법적 정당성을 증명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소속 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은 통화에서 “헌법재판소에 가서 야당 탄핵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며 “이 위원장 역시 본인이 사표 내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는 입장이다”라고 했다.
과방위 여당 측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통화에서 “방통위 ‘2인 체제’는 민주당이 원인 제공자”라며 “탄핵은 원인무효 적반하장으로 각하되겠지만, 탄핵 재판 중 정부 업무가 중단되기 때문에 판단은 위원장 개인과 정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일 방통위원장 후보 지명 당시 기자들과 만나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전임 방통위원장 두 분이 단 세 달, 여섯 달 만에 직에서 물러난 것을 목도하고 그 후임으로 지명됐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 두 분은 업무 수행에서 어떤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탄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방송과 통신을 담당하는 기관의 업무가 중단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리를 떠난 분들”이라고 옹호했다. 이 위원장의 전임자인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은 탄핵안 표결 전 자진 사퇴한 바 있다.
여권 한 관계자도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있는데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면 쉽게 탄핵 결정이 나지 않을 것”이라며 “탄핵안이 헌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그 역풍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달간 방통위 업무가 중단되면 교육방송을 포함한 공영방송의 주요 의사결정이 지연될 텐데 이로 인한 책임을 야당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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