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티몬·위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는 고객 돈을 쌈짓돈처럼 굴려온 큐텐그룹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모기업인 큐텐그룹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한 뒤 두 회사의 재무팀을 해체했다. 계열사의 재무업무는 또 다른 계열사인 큐텐테크놀로지가 맡았다. 그런 다음 큐텐은 지난 4월 북미 이커머스 ‘위시’ 인수자금 명목으로 티몬에서 200억원을 빌렸다. 티몬의 류광진 대표는 돈이 빠져나간 나흘 뒤에야 이를 승인했다. 지난 1월에도 50억원을 빌렸지만 승인은 집행 19일 후에나 이뤄졌다. 정상적인 자금대여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정부와 금융 당국도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금융 당국은 티메프의 자본 잠식 상황을 2년 전부터 알면서도 방치했다. 2022년 티메프에 경영 개선을 요구한 게 고작일 뿐,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한 번도 현장점검조차 나가지 않았다. 판매사에 줘야 할 정산대금을 사실상 유사금융업체처럼 굴렸지만, 금융회사가 아니다 보니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이커머스 기업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규정하는 법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티메프가 판매자에게 줄 돈을 40일 넘게 굴리면서 채무를 갚거나 회사를 확장하는 데 거리낌없이 ‘돌려막기’하도록 판을 깔아준 꼴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어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전자상거래법, 전자금융거래법 등의 적정성을 검토해 제도적 보완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만시지탄이다. 정부가 추산한 티메프의 판매자 미정산 대금은 2100억원 규모다. 앞으로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규모는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티메프에 이어 인터파크 커머스와 AK몰 등 큐텐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어제 티몬·위메프 사옥과 큐텐그룹 구영배 대표 자택 등 10곳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에 나섰다. 신속한 수사로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고 철저한 자금 추적과 구상권 청구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정부와 금융 당국도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이어선 안 된다. 국내 이커머스 거래규모는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장치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갖고 서둘러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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