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개폐방식 보고 신세계 느껴
국민의 발로서 일한 것에 자부심”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에서 만난 김화기(71) 전 역장은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국립철도고등학교 졸업 뒤 40여년 동안 철도청과 코레일에서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뒤에도 현재 철도운행안전관리자로 철도 관련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1호선과 인연이 깊은 ‘1호선의 산증인’이다. 용산역 역무원부터 시작해 남영역, 중동역, 역곡역, 간석역, 제물포역, 동암역, 소사역, 백운역, 군포역 등을 거쳤다.
서울열차사무소 여객전무와 서울지방철도청 근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1호선에서 재직했다. 1975년 개통 당시 1호선은 기존의 철도와는 기반 시설부터 운영 체제까지 달랐다. 김 전 역장은 “1970년대 당시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학생들이 개방된 출입문에 매달려서 장난치며 다녔다”며 “1호선 개통 후 승강장 플랫폼이 높아져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는데, 초반에는 이를 막기 위해 학생에게 들어가라고 장대로 밀곤 했다”고 말했다.
1호선은 온갖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유독 1호선에 눈에 띄는 독특한 복장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며 ‘1호선 빌런(악당)’이라는 말도 탄생했다. 김 전 역장은 “1호선은 구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곳”이라며 “서울에서 살고 싶거나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데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 도시가 발전하면서 점점 더 중심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고 했다.
1호선이 반세기 동안 진화하며 툭하면 고장나고 멈췄던 전철은 현대화됐고, 검표 시스템도 자동화됐다. 그는 “변화에 따라 흐름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국민을 괴롭히고 혼내는 직업이 아니라, 국민의 발로서 서비스하는 직업을 가진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역장 외에도 1호선에는 ‘서민의 발’로서 자긍심을 가진 철도인들이 많다. 2003년 1호선 영등포역 근무 때 열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다 두 다리를 잃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장은 올해 정년퇴직했다. 영등포역에는 ‘그대의 고귀한 희생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리라’는 기념비를 세워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잔잔한 미담도 전해진다. 2020년 용산역에서는 진통을 느끼고 쓰러진 임산부가 시민과 역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승강장에서 무사히 출산했다. 이들은 산모와 아기를 보호해 구급대원들이 무사히 인근 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2022년 10월 7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불꽃축제가 열릴 때 승객들이 축제를 즐기도록 서행한 기관사는 ‘낭만의 1호선 기관사’라는 별명으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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