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특보 속에 에어컨을 설치하다 열사병으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양준혁씨가 당시 쓰러진 뒤 사측의 조치 없이 땡볕 아래에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유족은 사망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나섰다.
양씨의 유족 측은 19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광주·전남 노동 안전보건 지킴이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고 당일 씩씩하게 인사하고 출근한 아들이 돌연 사망한 사고를 조사해 책임자들을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된 아들의 두 발은 불에 익은 것처럼 까맣게 변해있었다”며 “사인을 밝히기 위해 27살 아들의 장례도 며칠째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앞서 고인은 지난 13일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동료 근로자 2명과 에어컨 설치 작업을 했다. 그러다 열사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양씨가 처음 이송됐던 병원의 소견서에 따르면 양씨는 이날 오후 4시 40분쯤부터 열사병 증세를 보이면서 구토와 헛소리를 하거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등 이상행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양씨를 고용한 에어컨 설치업체는 이상증세를 보인 지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5시 30분쯤이 돼서야 119에 신고했다. 양씨는 10분 뒤 도착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돼 체온 측정을 거쳤지만 병원은 “고온으로 측정불가”라는 소견을 내렸다. 양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지 1시간 30분 뒤 사망했다. 유족은 “양씨는 사망하고 1시간이 지났는데도 체온은 40도를 넘겼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날 유족은 양씨가 의식을 잃었을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사측에서 이날 오후 5시 9분쯤 어머니에게 “아들의 상태가 이상하니 데려가라”며 보낸 사진이었다. 양씨가 쓰러질 당시 함께 있었던 현장 작업자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회사 관계자들이 즉시 신고했다면 아들은 살 수도 있었다”며 “쓰러져 있는 아들의 모습을 사진 찍어 가족에게 보낸 뒤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유족 측은 “그늘 한 점 없는 풀밭에 의식 없이 방치된 아들의 사진을 찍어 보낼 시간에 119 신고만 했다면 아들은 지금 제 앞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며 “또 사측은 제게 아들이 정신질환이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느냐면서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겼다”고 성토했다.
당시 사측은 어머니에게 다시 연락해 “119에 신고해도 되겠느냐”고 묻고 나서야 119에 신고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양씨는 숨질 당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족은 이를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유족 측 박영민 노무사는 “양씨는 회사 측과 월급 300만원의 정규직 계약을 통해 입사했지만, 첫 출근시 서류부족으로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못했고, 산업안전교육이나 폭염관련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씨 사망 이후 사측의 사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은 “아들의 사망 사고는 명백한 인재로 발생한 것”이라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진상을 밝혀내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규탄했다.
사측은 이러한 유족 주장에 대해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현재 조사 중인 당국에 적극 협조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 하겠다”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