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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가득하다. 그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성당과 집들의 고요함이 인상 깊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2㎞쯤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도시 아르장퇴유의 가을 풍경이다. 사람들이 번잡한 도시를 피해 평온한 휴식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인데, 클로드 모네가 여기서 5년 동안 머물던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이 도시를 끼고 흘러서 파리로까지 이어지는 센강 덕분인지 풍경의 운치가 더욱 돋보인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자리 잡은 붉게 물든 나무숲들의 정경은 어떤가. 물 위에 비친 찬란한 햇빛과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 그림자들이 한데 어울려 한껏 깊어진 가을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풍경의 화가로도 불리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그림 안에 담아서 그만의 가을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가을’(1873)

인상주의는 도시의 문명화된 도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던 19세기 말, 자연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세계에 가까이 가려 했다. 당시 유행했던 사실주의는 가식에서 벗어난 냉정한 눈으로 현실사회를 충실히 묘사하려 했다. 이와 달리, 인상주의는 빛의 변화와 색의 변화라는 자연의 감성적 진실을 채운 따뜻한 화폭을 이루려 했다.

특히, 모네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야외로 나가서 직접 체험한 빛의 효과를 빠르고 거친 기교로 나타내려 했고, 되풀이되지 않는 순간의 모습과 시각적 인상을 담으려 했다. 색을 팔레트에서 섞어 사용하지 않고, 인상을 쫓아 색 점들 자국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이 그림처럼 형태들은 명확하지 않지만 색채들의 향연으로 이룬 자연의 빛이 담긴 그림이 됐다. 마을의 평온함과 가을날 흔들리는 마음이 잘 어울리도록 했다.

9월로 접어들며 새벽녘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그래도 한낮은 여전히 덥고, 늦더위가 더욱 지치게 한다. 선선한 계절이 기다려지는 주말이다. 우리의 가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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