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최근 발생한 무선기기 연쇄 폭발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보복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이 이에 앞서 선제 공격을 선언하며 이들의 전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급격히 커지는 상황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이날 영상 연설을 통해 “호출기 수천개를 터뜨린 이스라엘은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 학살 공격은 선전포고로 볼 수 있다.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스랄라는 “헤즈볼라는 전례없는 타격을 입었지만, 이런 공격으로는 헤즈볼라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라며 “레바논 전선은 가자지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을 향해 “레바논 남부로 진입하기를 바란다”며 “이는 헤즈볼라에게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와 이스라엘 접경지 등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지급된 무선호출기 수천대가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이튿날에는 헤즈볼라 대원들의 무전기들이 폭파됐다. 이틀간 폭발 사건으로 총 37명이 사망하고 약 3000여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헤즈볼라는 지난 2월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 최근 몇 달간 무선호출기와 무전기를 도입해 사용해왔다.
이스라엘은 이 폭발 사건과 연관성을 확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공작이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는 서구 언론의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18일 로이터통신이 레바논 고위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이들 무선기기에 소량의 폭발물을 심는 방식으로 폭발 사건에 개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 비밀 첩보기관인 8200부대가 무선기기 생산 단계에서 폭약을 장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술적 측면 등을 통해 개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실상 이스라엘 배후설이 정설로 굳어지는 흐름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이날 나스랄라의 영상 연설에 앞서 헤즈볼라 공격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에서 “헤르지 할레비 참모총장이 전쟁 지속 계획을 승인했다”며 북부 지역에 대한 계획 승인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재 레바논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공격해 헤즈볼라의 테러 역량과 인프라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군은 “공군이 약 30개의 헤즈볼라 발사대와 테러 인프라를 폭격했다”고 면서 지상군도 레바논 남부 여러 지역의 무기 저장고 등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접경지 데이르카눈 엔나흐르 지역을 대규모로 공습했다고 레바논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미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북부에 있는 라맛 다비드 공군기지를 방문해 “나는 우리가 새로운 전쟁 단계의 시작점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며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암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상대에 대한 공격을 선언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면전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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