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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약 안 받아요” 약국도 거부… 갈 곳 잃은 폐의약품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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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23 19:25:52 수정 : 2024-09-24 07: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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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7개區 ‘약국 통한 수거’
포장 뜯어 정리 등 번거로움에
약사는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
지자체 수거 지연에 어려움도

매립·하수구에 버릴 땐 오염 심각
우체통 등 배출 인프라 확대 필요

“버리는 약이요? 우린 안 받아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기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수거하느냐’고 묻자 약사는 “주민센터에 가져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날 기자가 동묘역 인근의 약국 10곳을 찾아갔지만, 8곳에서 ‘폐의약품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폐의약품을 받은 2곳 중 1곳은 ‘알약은 받지만 물약은 받지 않는다’고 했고, 조건 없이 폐의약품을 받은 곳은 나머지 1곳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폐의약품을 약국이나 우체통을 통해 수거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폐의약품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폐의약품을 매립하거나 하수구에 버릴 경우 환경오염을 초래하는 만큼 수거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약국을 통한 폐의약품 수거는 일부 자치구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성북·강북·서대문·강서·금천·서초·강남구 7곳에서만 구청에서 약국에 모인 폐의약품을 수거하고 있다”며 “그마저도 서초·강남·강북 외엔 극소량”이라고 말했다. 이들 구에선 1∼2개월마다 구청 담당자가 약국을 순회하며 폐의약품을 수거하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약국이 폐의약품을 받더라도 자체적으로 폐기하거나 보건소에 제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뉴시스

약국들도 폐의약품 처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혼자서 약국을 운영한다는 약사는 “손님들이 약 포장지를 뜯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 내가 일일이 정리해야 했다”며 “결국 버리는 약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약사는 “길게는 몇 달까지도 폐의약품을 보관해야 하다 보니 더 이상 수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폐의약품이 매립되거나 하수구로 버려지면 의약 성분이 토양과 하천에 남아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2009년부터 시민들이 편리하게 폐의약품을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대한약사회·제약사 등과 협약을 맺고 약국을 통해 폐의약품을 수거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포장을 벗기지 않은 약과 영양제를 가져오고, 지자체에서 약국에 모인 폐의약품을 빠르게 수거하지 않으면서 약사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서울시약사회는 2021년 ‘지자체가 폐의약품을 수거해가지 않는다’며 폐의약품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에 전달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의 약국 중 폐의약품을 받는 곳은 전체의 51.3%에 그쳤다. 대전(99.1%)·경북(94.7%) 등 일부 지자체의 경우 약국의 수거 참여율이 높지만, 서울은 절반 수준인 59.1%였고, 경기(31.9%)·전북(32.2%) 등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각 지자체는 구청·행정복지센터 등에 설치된 수거함을 통해 폐의약품 분리배출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동네 약국에 비하면 접근성이 떨어지고, 수거함이 실내에 설치된 경우 배출 시간에도 제한을 받는다.

지난해 6월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서울·경기·광역시 시민 82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폐의약품 수거함을 사용해 본 응답자는 36%다. 폐의약품 수거함 설치를 원하는 장소를 묻자 ‘아파트 관리사무소(38.5%)’·‘약국 및 병원(35.1%)’ 등 접근성이 좋은 장소가 꼽혔다. ‘재활용품일에 분리배출하고 싶다’는 답변도 23.5%였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폐의약품 분리배출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약국·보건소 외에도 접근성이 좋은 배출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일례로 ‘우체통 수거’ 방식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우체통 폐의약품 회수 건수는 지난해 1만6557건에서 올해 1∼7월 2만4952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운영한 세종시는 사업 전후로 폐의약품 수거량이 전년 대비 6.5t 증가해 11.9t을 기록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한 우체통에 ‘폐의약품 회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우정사업본부와 협약이 이뤄진 지역에서는 물약을 제외한 약을 전용봉투나 폐의약품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아서 우체통에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예산과 수익성의 문제로 전국 226개 지자체 중 우체통을 통해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지자체는 33곳에 그친다. 올해 10개 지자체가 해당 사업을 신청하면서 내년부터는 43곳으로 늘어날 예정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우체통으로는 다른 우편을 오염할 우려가 있는 물약은 배출할 수 없다.

 

의약품의 무분별한 배출은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지난해 7월 국제 학술지 ‘환경독성학&환경안전’에 따르면 광주과학기술원·창원대 연구진이 낙동·영산·금·한강 지표수를 분석한 결과 검사한 의약 성분 137개 중 120개가 검출됐고, 특히 무좀 연고 성분인 클로트리마졸과 우울증약 성분인 플루옥세틴이 유의미하게 나왔다. 클로트리마졸은 하천에 녹아들면 녹조류의 성장을 방해하고, 플루옥세틴은 담수어의 번식력을 약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는 “폐의약품 문제는 10여년 동안 방치돼 왔고, 단숨에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위험성이 높은 마약류만이라도 올바른 배출이 이뤄지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수거 체계를 정비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목표와 예산을 설정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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