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 희생해 전우들 구해… ‘명예훈장’ 추서
6·25전쟁 기간 가장 치열했던 싸움들 중 하나인 후크(hook) 고지 전투에서 영웅적 활약을 펼치고 장렬하게 전사한 미국 해병대원의 사연이 전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그는 전후 제대했으나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재입대했다.
7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루이스 왓킨스(Lewis Watkins) 해병대 하사는 192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에겐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모두 농장에서 부모의 일을 거들며 자랐다.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다.
왓킨스가 고등학생이던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그때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2차대전을 관망하기만 했던 미국이 직접 전쟁에 뛰어들었다. 왓킨스는 다니던 고교를 자퇴하고 해군에 입대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며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무사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 왓킨스는 제대한 뒤 고교 과정을 마치고 1949년 지역 경찰서에 들어갔다.
경찰관으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 왓킨스는 재입대를 결심하고 그해 9월 해군 대신 이번에는 해병대 훈련소에 입소했다. 가족은 2차대전 참전용사로서 이미 4년이나 군 복무를 한 그가 다시 군복을 입는 것에 반대했다. 왓킨스의 여동생은 먼 훗날인 2001년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빠의 재입대를 굳이 막지는 않았으나 그가 왜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오빠는 해군에서 4년간 자신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하지만 왓킨스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만류하는 가족을 향해 “나는 내 역할을 하고 싶다”(I want to do my part)라고 말했다.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뒤에도 왓킨스는 바로 한국에 파병되진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캘리포니아 등 미국 국내의 해병 기지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뒤 1952년에야 그가 속한 해병 제1사단 7여단 3대대 전우들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경기 연천군 임진강 북단의 해발 200m 고지에서 미군 등 유엔군과 중공군 간에 4차례에 걸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해당 고지를 둘러싼 지형이 쇠고리와 닮았다고 해서 ‘후크 고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왓킨스의 부대는 1952년 10월 제1차 후크 고지 전투에 투입됐다. 적군이 점령한 최전선 전초기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는 소총 소대를 이끌고 목표 지점에 접근했다. 소대가 이동하는 도중 이를 알아챈 적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총탄과 수류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왓킨스는 크게 다쳤다. 그래도 침착하게 부하들을 지휘하면서 직접 자동 소총을 쏴 적군의 기관총을 무력화시켰다. 소대가 다시 전진하려는 찰나 적군이 던진 수류탄이 왓킨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순식간에 옆의 전우들을 밀침과 동시에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왓킨스가 수류탄을 던지려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수류탄이 폭발했다.
왓킨스의 희생 덕분에 동료 소대원들은 목숨을 건지고 임무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치명적 상처를 입고 숨진 왓킨스는 끝내 전우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 훼손이 너무 심하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 나머지 수습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왓킨스는 전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실종 상태’(missing)로 분류돼 그 이름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태평양 국립묘지의 실종자 명비에 새겨져 있다.
미 행정부는 왓킨스의 용맹을 기려 그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했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전사 이듬해인 1953년 9월 미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해병대 막사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이 고인을 대신해 부모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부모는 미국인 누구나 이 명예훈장을 보고 아들을 추모할 수 있도록 훈장 메달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오코니(Oconee) 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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