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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41주기와 세종연구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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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09 11:35:41 수정 : 2024-10-09 11: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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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 원로들 사이에 1983년은 ‘악몽의 해’로 기억된다. 그해 9월1일 뉴욕을 떠나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추락했다. 소련(현 러시아)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았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소련은 “적군 정찰기인 줄 알았다”며 발뺌했다. 우리는 우방은 물론 중립국들의 소련 성토까지 이끌어내고자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1개월여 뒤인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당시 이 나라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폭거였다. 당시 유럽의 한 대사관에 근무한 어느 외교관은 훗날 회고록에서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이 또다시 지난번 대한항공 사건 때와 똑같은 교섭을 되풀이해야만 했다”며 “소련 대신 북한이 규탄의 대상이 된 것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미얀마(옛 버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역 인근에 조성된 아웅산 테러(1983) 희생자 추모 시설 모습. SNS 캡처

아웅산 테러 순직자 중에는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만 5명이 있었다.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들이다. 여기에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차관급 인사도 여럿 포함됐다. 특히 이들 6명은 하나같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실력을 갖춘 대한민국 대표 인재였다.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외교 분야에서 한국의 고도 성장을 견인한 주역들이기도 했다. 당시 나이가 4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까지였으니 테러만 겪지 않았다면 10∼20년은 더 활동하며 한국 발전에 훨씬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힌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 대통령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5공화국이 ‘부패한 군사정권’으로 청산 대상이 되면서 아웅산 테러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혔다. 전 대통령의 버마 방문은 당시만 해도 한국 외교의 불모지였던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럼에도 ‘과거 버마 군사정권을 이끈 독재자한테 한 수 배우러 간 것 아니냐’는 식의 폄훼와 비아냥이 잇따랐다. 사건 후 31년이 지난 2014년에야 미얀마 현지에 추모비가 건립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듬해인 2023년 10월9일에는 테러 40주기를 맞아 서울현충원에서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아웅산 테러 4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당시 순직자들을 넋을 기리며 분향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 바로 뒤 앞줄 오른쪽은 김현욱 세종연구소장, 왼쪽은 최윤정 세종연구소 부소장. 세종연구소 제공

아웅산 테러 4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재단법인 세종연구소 관계자들이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을 찾아 당시 순직자들의 넋을 기려 눈길을 끈다. 이용준 이사장, 김현욱 연구소장을 비롯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과 직원 전원이 함께했다. 사실 세종연구소는 아웅산 테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테러 직후 “순직자 자녀들 학비 지원과 국가안보 연구·교육 등을 담당할 기구를 만들라”는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1983년 12월 출범한 일해재단이 오늘날 세종연구소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일해’(日海)는 전 대통령의 호(號)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세종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처음부터 ‘일해’라는 명칭은 쓰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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