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신고 건수 전년 동월比 2배 이상↑
“실효성 있는 도용방지 대책 마련해야”
서울 강남구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해외 직구한 물건의 통관 여부가 궁금해 관세청 전자통관사이트에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자신의 이름과 개인통관고유부호를 통해 주문한 적 없는 신발들이 중국에서 발송됐기 때문이다.
A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제가 알지도 못하는 물건이 저도 모르게 해외에서 들어온다고 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며 “제 이름으로 물건을 사이트에 올려 보낸 업체에 항의했더니 며칠 뒤 그 사이트를 폐쇄하고 잠적했다”고 토로했다.
마포구에 사는 B씨는 지난 5월 사지도 않은 해외 직구 물건들이 배송 완료됐다는 문자를 수십 건 받았다. B씨는 “주문하지 않은 물건들이 해외에서 배송됐다는 문자를 받고 스미싱인 줄 알고 그냥 넘겼다”며 “그런데 이후 경찰에서 마약 밀수로 연락이 와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해외 물건을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는 일명 ‘직구’가 대중화되면서 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범죄가 늘고 있다. 정부가 관련 검증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도용 신고가 더 늘어난 데다 불법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신고 건수는 2709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1154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통관고유부호는 관세청에서 개인이나 사업장의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입 신고 시 주민등록번호와 사업자등록번호 대신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부호다.
해외 발송 물품을 구입할 때 배송료를 제외한 물건 가격이 미국발 제품은 200달러, 미국 외 제품은 150달러 미만이면 신고가 면제되지만 그 이상이면 관세를 내야 한다. 이때 수령자를 식별하기 위해 통관부호가 사용된다.
일부 업체들은 세금이 붙는 판매용 제품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자가 사용 제품으로 위장하기 위해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도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명의 도용 신고가 늘면서 관세청은 올해 8월 29일부터 이름과 전화번호, 개인통관고유부호가 모두 일치해야만 통관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그 이전에는 부호와 성명 또는 부호와 전화번호만 일치하면 통관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도용 신고는 더 늘었다.
조치가 시행된 직후인 지난달 접수된 도용 의심 신고 건수는 2709건으로, 검증 조치가 강화되기 직전인 7월(2209건)과 8월(2170건)보다 500건가량 증가했다. 올해 2월과 비교하면 1909건 늘었다.
올해 9월까지 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누적 건수는 1만6901건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1만1689건)와 비교하면 44.6%가량 많았다.
지난달에는 한 이커머스 중개 플랫폼 업체에서 11만여 건의 개인통관고유부호가 포함된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개인통관고유부호는 수출입 신고 시에만 사용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가 도용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데다, 신고하지 않으면 도용 사실을 적발하기 어렵다.
타인의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도용해 불법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직구나 물류량이 증가할수록 마약이나 총기류 은닉, 불법 밀반입 등의 범죄에 타인의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이용한 신분 위조·변조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사전에 도용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AI 등을 활용한 사후 적발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규근 의원은 “대규모 개인통관고유부호 유출 사건이 벌어지고 도용 의심 신고도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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