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무기지원에도 변수…'美의회 한미동맹 초당적 지지' 영향 제한적일 수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사실상 승리하면서 한국 외교는 상당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선 1기 행정부 당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재현하며 동맹도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에도 역할과 비용 부담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의 중심인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치외교와 대중·대러정책 등 우리의 글로벌 전략이 모두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물 샐 틈 없는 공조를 자랑했던 대북 대응에서도 불협화음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그가 첫 재임 시기 예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요구로 판을 흔드는 전략을 취했던 만큼, '트럼프 2기'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도 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여러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현실이다.
◇ 트럼프, 또 방위비로 동맹 흔드나…재협상 추진여부 주시
당장 관심사는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이다.
한미는 미 대선을 앞두고 협상을 서둘러 2026∼2030년 적용되는 제12차 SMA에 지난달 합의했다. 2026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인상한 1조5천192억원으로 하고, 이후 인상률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협상 타결 이후에도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부유한 나라를 의미)이라고 지칭하며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그들(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그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당시 기존 금액의 6배 규모인 연간 50억 달러의 무리한 요구를 한 전례가 있다. 이는 장기간 협상 교착으로 이어졌고 결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21년에야 협상이 마무리됐다.
정부는 트럼프 취임 전에 국회 비준을 거쳐 12차 SMA를 발효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협상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 주한미군 영향도 주목…트럼프, 1기 때 '철수' 자주 언급
방위비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감축 이슈와 맞물려 돌아갈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요구한 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주한미군 규모나 전략자산 전개를 카드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재임 시기 주한미군 철수를 자주 거론했고, 심지어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의 트윗 발표까지 검토했다가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막후 교섭으로 불발된 것으로 알려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라고 제안하자, 트럼프가 "그렇지, 맞아, 두 번째 임기"라며 미소를 지었다는 일화도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특히 1기 때는 매티스 국방장관과 맥매스터 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존 켈리 비서실장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으로 불린 노련한 인사들이 트럼프의 충동적 정책을 '견제'했다면, 2기 때는 'MAGA' 추종자들을 권력 핵심에 배치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경우에 따라서는 동아시아 방어거점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대거 이동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北비핵화' 목표 흔들리면 한미동맹도 흔들…우크라 무기지원도 영향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껏 한미동맹이 추구해 온 '북한 비핵화' 목표에서 물러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핵무기에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핵 보유국' 북한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위협을 관리하는 데 치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등 '핵 동결' 대가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경우에 따라선 한국만 북한 핵 위협에 남겨지는 상황으로 이어져 한미 간 대북 공조는 물론 동맹의 근간까지 흔들리는 최악의 국면이 펼쳐질 위험성까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추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를 고려하면 한국 정부의 북러 군사협력 대응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의 러시아를 위한 우크라전 파병에 대응해 우크라에 대한 단계별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미국의 태도에 따라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對)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자연스레 한국도 지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뒤집으면서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 한국 경제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 한미동맹 지지는 '초당적'…'기회요인'도 있어
그러나 외교 당국자들은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초당적이라며 트럼프 2기에도 한미동맹은 굳건하게 유지되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에 앞서 한국 측과 접촉한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인사들 대다수가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한미일 협력 강화 방향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위기야 있겠지만 기회 요인 또한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1기 당시 두 차례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과 우주 발사체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했던 것처럼 트럼프 2기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분야에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성을 겪었던 한국 외교 당국은 그간 트럼프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상황에도 면밀히 대비해왔다.
의회는 물론 학계, 재계의 트럼프 전 대통령측 인사들과 네트워크 구축에 힘써 왔고, 다양한 계기에 한국이 얼마나 한미동맹에 기여하는지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리더 간의 개인적 인간관계를 굉장히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면서 "당선인 시절 시작 시점부터 최고위급뿐만 아니라, 스태프 레벨에서도 다양한 접촉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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