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추계기구 입법화 로드맵 등
대한의학회·KAMC 요구부터 살펴
정부 “정원 수정불가” 전공의 “재검토”
교수단체 “모집인원 재조정” 등 제각각
박단 “지금이라도 모집 정지해야” 주장
의료계 ‘정부의 협의 파기’ 불신 높아
‘협의체 결정에 구속력 부여’ 목소리도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10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11일 출범하면서 정치권 주장대로 올해 크리스마스 전에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료계는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을 앞두고 협의체가 구성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의료대란을 촉발한 전공의·의대생들이 빠진 협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전공의·의대생의 내년 3월 복귀를 위해선 올해 안에 ‘복귀 의사’를 확인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에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여해 개문발차(開門發車)했지만, 야당과 다른 의료계 단체 추가 참여를 위해선 과거 의료계와의 협의를 정부가 지키지 않은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협의체 결정에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협의체 출범 환영하지만…”
협의체는 대한의학회·KAMC가 참여 조건으로 내건 원칙들에 대해 우선 논의할 전망이다.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11일 협의체 참여 배경으로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협의체에 대한 반대 의견과 실질적 성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며 “하지만 현안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정부와 의료계 불통 속에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사상 초유의 의료 시스템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아울러 “정책이 국민과 의료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대한민국 보건의료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진지하게 협의에 임하겠다”면서 “협의체가 의료계와 현장의 목소리가 충실히 반영되고 정책적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한의학회·KAMC는 협의체 참여를 알리면서 △2025년 및 2026년 의대정원 논의와 의사수 추계기구 입법화 구체적 로드맵 설정 △의대생 교육, 전공의 수련 내실화 위한 국가 정책 수립과 지원 보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독립성?자율성 보장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개편 등 5개 원칙을 제시했다. 이 중 첫번째인 ‘의대생 휴학 승인’은 정부가 이미 허용키로 하면서 협의체 출범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2025년 정원 이견 해법, 성패 좌우
협의체가 연말 전에 성과를 내려면 2025년 의대 정원에 대한 시각차를 좁혀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의학회·KAMC 관계자는 “내년 의대 정원에 대해 어떤 합의를 할지 등에 대해 우선 성과가 없다면 다른 안들에 대한 협의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2026년 의대 정원에 대해선 협의체에서 합리적 논의를 거쳐서 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2025년 정원은 수능이 코앞이라는 점 등에서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반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2025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요구에서 물러선 적 없고,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교수단체는 최근 의대들을 상대로 ‘모집인원 재조정’을 주장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공의·의대생 등 당사자 없는 협의체 출범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고, 한동훈 대표에게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 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2025년 의대 모집 정지를 하든, 7개 요구안 일체를 수용하든 뭐라도 해야 다가올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할 법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이행’ 보장돼야 외연 확대”
협의체가 결국 성과를 내려면 전공의·의대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료계의 지적이다. 박 비대위원장 주장처럼 올특위가 며칠 만에 좌초된 것은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전공의와 의대생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협의체 첫 회의에서 “만남을 시작하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가 중단될 줄 몰랐다”며 “전공의 목소리가 실제 의료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정부를 믿고 대화에 참여해주실 것을 전공의와 의대생, 아직 고민하는 의료계에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의료계는 과거 의·정 갈등 이후 정부가 협의를 수차례 깼다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하다. 한 의협 인사는 “과거 경험 때문에 회의만 자꾸 해봐야 뭐하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어떤 결정에 대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협의체 참여도 늘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진우 회장도 “의료계는 과거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논의는 했지만 정부 의도대로 정책이 추진되고 허울뿐인 참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경험은 의료계로 하여금 정부와의 신뢰 형성에 장애물이 됐으며 진정한 협력과 소통을 위한 기반 약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와 여당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갈등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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