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용한 이들 중에는 뷔페 식당 ‘스칸디나비안 클럽’을 기억하는 이가 제법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뷔페는 커다란 식탁 위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차려 놓고 손님 스스로 선택해 덜어 먹도록 한 것을 뜻한다.
스칸디나비안 클럽은 흔히 한국 최초의 뷔페 식당으로 통한다. 그런데 클럽 이름의 스칸디나비아란 북유럽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3국을 가리키는 용어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스칸디나비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 병원에, 그것도 병원 부설 식당에 발자취를 남긴 배경은 무엇일까.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졌을 때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독일까지 6개국이 의료진을 보내 한국군 및 유엔군 장병의 부상을 치료했다. 이들은 군인 외에 병들거나 다친 민간인들도 돌봤다. 의료지원국들 중에서도 스웨덴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은 1950년 9월 임시수도 부산에 상륙해 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57년까지 6년 6개월간 2만5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3국 의료진은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한국에 남았는데 1958년 개원한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은 이 세 나라가 제공한 인력과 시설 그리고 장비를 토대로 출발했다. 3국 의료진의 구내 식당으로 쓰인 곳이 바로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다.
국내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북유럽 스타일의 요리는 한국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고유의 청어 요리와 훈제 연어 요리가 일품이었다. 1960∼1970년대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정일권,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러나 서울 시내 여기저기에 뷔페 식당이 흔해진 뒤부터 방문객이 줄더니 2012년에는 경영난을 이유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중구 옛 미군 공병단 부지로 옮겨 신축하는 방안이 확정된 가운데 시민들 사이에선 ‘의료원이 떠나고 남은 터에 스칸디나비안 클럽을 복원하자’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스웨덴 6·25전쟁 참전용사 단체 중 하나인 한서협회가 ‘6·25전쟁의 스웨덴 야전병원’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 눈길을 끈다. 전쟁 당시 스웨덴 의료진이 직접 촬영한 사진 100여장이 실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책자 발간이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낸 기부금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는 2023년 9월 스웨덴 방문 당시 한서협회 측에 기부금을 전달한 바 있다. 한서협회 라스 프리스크 명예회장이 전쟁기념사업회에 고마움을 전하며 “책을 통해 당시 수많은 한국 군인과 민간인을 도운 스웨덴의 인도적 지원과 노력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니 절로 숙연해진다.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3국 간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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