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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억 칼럼] 개헌에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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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13 23:18:14 수정 : 2025-01-13 23: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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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사태 후 개헌논의 분출
국민 열망 뒷받침돼야 탄력 받아
헌법만으로 민주주의 보장 못 해
상호관용 등 비공식 규범도 중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다시 개헌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승자독식인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를 재차 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1987년 현행 헌법이 탄생한 이후 38년 동안 불행한 대통령을 양산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기인한다는 게 개헌론자의 인식이다. 대통령의 행정 권력과 다수당의 의회 권력이 충돌할 경우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한다. 권력을 분산하면 민주주의 구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현행 헌법이 변화된 사회, 발전된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는다.

그 대안은 백가쟁명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책임총리제 등이 거론된다. 각 제도의 효용성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한국 정치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선거구제 개편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제도 각각의 장단점을 놓고 인식차가 워낙 커서 공통분모를 찾는 건 쉽지 않다.

박창억 논설실장

4년 중임제의 경우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수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에서는 ‘임기 8년의 제왕’이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국민이 대통령을,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면 대통령과 총리 사이 권력 다툼으로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안철수 의원 지적대로 ‘윤석열 대통령-이재명 총리’ 구도라면 그 혼란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정치 선진국 대부분이 운용 중인 내각제도 한국에 도입할 경우 총리가 수시로 바뀌는 등 정치 혼란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선거구제와 다당제의 효용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1988∼1989년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4당 체제 시절 타협과 조정이 활발했다는 회고(유인태 전 의원)가 있다. 반면 2017년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4당 체제에서 이견 조정이 어려워 합의로 되는 게 거의 없었다는 증언(우상호 전 의원)도 있다.

이번에도 개헌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70석의 거대 야당에서 일극 체제를 구축하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소극적인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개헌론을 “뜬금없다”고 일축했다. 국민의힘의 조기 개헌 주장은 탄핵정국의 논점을 흐리는 꼼수라는 입장이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우선 단일안에 의견이 모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뜨거운 열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민의 요구가 개헌에 주저하는 정치세력을 압박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87년 개헌만 해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장기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있었다.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지만, 이는 단순 선호 조사에 불과하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모든 헌법은 불완전하며 수많은 공백과 애매모호함이 존재한다. 아르헨티나의 1853년 헌법, 필리핀의 1935년 헌법은 미국 헌법을 베끼다시피 했다. 두 나라는 훌륭한 헌법을 보유했지만, 각각 군사 쿠데타와 포퓰리즘, 장기독재로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했다. 1987년 10월 12일 이재형 당시 국회의장이 개헌안 통과 후 “개헌이 곧 민주화는 아니다”라고 일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의장은 “‘좋은 헌법’에 정치인의 슬기, 국민적 양식과 협력이 플러스 되어야만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니 혜안이 있었던 셈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상호관용’과 ‘권리 행사 절제’의 두 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헌법이 아니라 정치 문화라는 비공식적 규범일 것이다. 개헌이 성사된다고 해도 정치 풍토라는 소프트웨어가 바뀌지 않으면 민주주의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동시에 정치 문화 개선이 없다면 개헌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박창억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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