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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일왕·부부별성제’ 도입 목소리에… 보수적 日 ‘들썩’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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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18 16:52:30 수정 : 2025-01-18 16: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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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여소야대 정국 속 논의 탄력

日 ‘황실전범’엔 남성만 왕위 계승
부계혈통 3명뿐… 왕실 미래 위협
‘여성 왕족의 지위 격상’ 대안 제시

결혼한 여성 90%가 ‘남편 姓’ 따라
유엔 “성차별” 네 번이나 시정권고
59% “姓 스스로 결정”… 반대는 29%

강성 보수층 반발에 자민당은 ‘눈치’
제1야당 대표 “30년 걸친 숙제 풀 것”
日언론들 “소수여당인 지금이 적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일본 정부에 ‘부계 남성’만 왕위를 계승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혼 뒤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게 해 대부분이 남편 성씨를 따르는 ‘부부동성제’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반발했다. 왕위계승은 국가의 기본에 관련된 것이라 위원회가 거론할 문제가 아니고, 부부동성제는 가족의 존재 방식과 관련돼 국민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 한 여성이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주장하며 “이름을 나 그 자체, 나인 채로 결혼을”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교도통신

오래된 ‘전통’으로 여겨지는 왕위계승 방식, 부부동성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에 불쾌하다는 반응이 역력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왕족의 급격한 감소로 왕위계승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라 여성 일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부부동성제로 인한 불합리,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다. 변화의 필요성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두 사안을 일본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보수층이 존재하고, 이들의 눈치를 보며 정치권이, 특히 집권여당 자민당이 주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이런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소수여당으로 내려앉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다. 여성 일왕 등 여성 왕족 지위 강화, 부부동성제를 대신할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논의에 탄력이 붙고 있다.

 

◆여성 왕족 지위 강화될까

일본은 왕위계승 방식, 왕족 신분 규정 등을 담은 ‘황실전범’으로 일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계 남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을 이을 수 있는 계승자는 동생인 후미히토(文仁) 왕세제, 후미히토 왕세제의 아들 히사히토(悠仁), 나루히토 일왕의 삼촌 마사히토(正仁) 3명뿐이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왕족 신분을 잃는다고 정하고 있어 왕실 존속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염려도 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여성 왕족의 지위 격상이다. 여성에게도 계승자격을 주자는 논의가 대표적이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90%가 여성 일왕 도입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일왕의 역할에 성별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2005년 전문가회의에서 여성 일왕, 모계 일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제언이 도출되기도 했다.

또 결혼을 해도 여성의 왕족 신분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강하다. 전문가회의가 ‘구궁가(舊宮家, 옛 왕족)로부터 양자 입양’과 함께 이런 대책을 왕실 유지 방안으로 2021년 제시해 현재 일본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왕실 질서를 고수해야 한다는 보수층이 여전히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정치권이 논의를 주저해 온 이유다. 2023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총리가 나서 안정적 왕위계승을 위한 논의 진행을 촉구했지만 자민당은 한 차례 간담회를 열었을 뿐이다. 평소 모계 일왕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역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을 때는 “남성 승계 전통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보수층은 남성 일왕을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여기지만 부계 남성 계승을 명문화한 건 메이지시대(1868∼1912년)에 들어서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일반적인 가치관, 황족(왕족) 남자가 군대 업무를 담당하고, 천황(일왕)이 군통수권을 갖고 있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며 “메이지시대 이전에는 남계를 절대시해 여계를 배제하는 의식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내의 성씨 선택 가능해질까

일본에서 부부는 같은 성씨를 써야 한다. 어느 쪽을 따를 것인지 대해서는 규정이 없지만 90% 이상이 남편 성씨로 통일한다. 결혼을 기점으로 여성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다. 여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를 포함해 네 번이나 시정을 권고했다.

성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성씨 변화에 따른 당사자의 불편이나 사회적 비용이 크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지난해 6월 관련 법률 개정을 촉구하며 결혼 전후 성씨가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해 “사업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며 “국회에서 기탄없는 논의를 한시바삐 시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부부가 성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부부별성제다. 여론의 지지도 강해 지난해 7월 NHK방송 여론조사 결과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59%에 달했다. 반대는 찬성 의견의 절반도 안 되는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성 일왕과 마찬가지로 별성제가 전통에 어긋난다는 보수층의 반발,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현실화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보수층은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전통적 가족관’에 배치되고 ‘가족의 일체감’을 해칠 것으로 여긴다. 가족을 기초단위로 하는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고도 우려한다.

보수층의 반발은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에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지난해 12월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상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단결회’ 모임에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이 잇따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자민당 일부에 선택적 부부별성제 추진에 따라 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견해가 존재하며 “보수정당으로서의 ‘자민당다움’을 견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여소야대, 변화의 기폭제 되나

지난해 12월 일본 국회 중의원(하원)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자민당) 의장,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입헌민주당) 부의장이 회담을 갖고 안정적 왕위계승을 위한 “입법부의 총의”를 올해 정기국회에서 도출하는 걸 목표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 7일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간사장은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과 관련한 당내 기구 논의를 재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랜 과제인 안정적 왕위계승 방안 도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과 관련된 성과를 올해 안에는 내겠다는 움직임이 연초부터 활발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총선으로 일본 정치의 지형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 이런 움직임의 배경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민당은 소수여당으로 내려앉았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수가 안 된다. 자민당에 비해 변화에 적극적인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다수가 됐다. 이는 여성 왕족 지위 강화,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의 문턱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닛케이는 안정적 왕위계승 방안 도출과 관련해 “여당이 중의원에서 과반수에 미치지 못해 논의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 논의를 진행할 국회 상임위원회 변화도 주목된다. 야당 의석이 크게 늘면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논의를 담당하는 법무위원회 위원장을 입헌민주당이 차지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입헌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약 30년에 걸친 숙제를 논의의 장으로 올려 성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일본유신회 대표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오사카부 지사도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의석수가 줄어든 자민당이 보수층 지지를 더욱 의식해 논의가 오히려 정체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사히는 “이시바 총리 주변에서는 ‘자민당 내에서 정리될 것 같지 않은 문제는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올해 7월 있을) 참의원(상원) 선거 전에는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는 피하고 싶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보수 지지층 이탈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은 최대한 뒤로 미루겠다는 계산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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