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호무역주의에 타격 불가피
韓 등 우방국 보편관세도 15%선 전망
실제 부과 땐 대미 수출 최대 14% ↓
IRA 혜택 축소로 韓 자동차 업계 부담
전기차 수요 위축 배터리업계에 악재
현대차 “다양한 라인업 기반 유연 대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첫날인 20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을 쏟아내면서 한국 경제에도 거친 파고가 예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아 당장의 타격은 피했지만,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자금 지출 중단을 지시해 대미 무역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보편관세 부과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 각서에 서명하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미국이 체결한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한국을 구체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으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검토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17년 7월 갑작스레 한국 측에 한·미 FTA 수정 요청을 통보했다. 이후 약 1년여간 한·미 FTA 개정 협상을 몰아붙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한·미 FTA 개정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마이클 비먼 전 미국 USTR 대표보는 21일 한국무역협회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미국의 정치적 분열이 제로섬 기반의 새로운 무역 정책을 촉발했다”며 “이런 변화가 한·미 관계에 미칠 파급 효과에 한국이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상무부에 만성적인 상품 무역적자의 원인과 영향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권고할 것을 지시했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입품도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검토 결과는 4월 1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천명하면서 한국의 대미 무역도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미국의 노동자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우리의 무역체계의 전면 개편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556억9000만달러(약 82조원)로 역대 최고치였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 연간 대미 수출액(1278억달러)이 10.5%나 증가한 덕분이다. 한국이 지난해 미국 한 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은 전체 무역수지 흑자액(518억달러)보다 많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관세 부과 공약도 한국 기업에 암운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내달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으나 보편관세 부과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조속히 부과할 것”이라고만 했다. 무역 업계에 따르면 미국 현지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을 포함해 우방국에 대한 보편관세가 15%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10∼20%선의 보편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8.4~14.0%(약 55억~93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도 약 0.1~0.2%포인트 낮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전 부처에 IRA와 인프라법에 따라 책정한 자금의 지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전기차 의무화 폐지도 지시했다.
일련의 정책 발표에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북미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던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17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미국 내 ‘톱4’를 기록했다. 관세 폭탄에 보조금 성격의 세액공제 등이 모두 사라지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발맞춰 전기차 개발과 판매에 집중해 왔다.
전망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세 부과와 보조금 축소 기조에 맞는 대안을 준비한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해당 조치는 미 정부가 모든 자동차 제조사에 공통 적용하는 사항”이라며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다양한 라인업을 기반으로 시장 수요 및 정책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 조지아주에서 가동 중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당초 전기차 전용 공장에서 하이브리드 생산도 가능하도록 변경했으며, 올해 내 생산량을 연간 5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한 HMGMA와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공장 등에서 연간 생산량을 118만대까지 끌어올려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70%까지 확장해 관세 부과에 대응할 방침이다.
전문가들 역시 미국의 정책변화가 국내에 위기이자 기회라고 보고 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 수요는 위축되겠지만,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고 점유율을 높였다”며 “보조금 정책까지 사라진다면 우리가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다가 그 요소가 제거된다”고 설명했다.
부품업체에는 악영향이 예상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관세 부과 시 미국으로 가는 완성차 수출 금액과 물량이 다 줄어들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우리 부품 수출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차전지 업계에는 전기차 수요 위축이 분명한 악재로 분석된다. 당장 이차전지 수요 둔화에 더해 투자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불확실성이 크다고 투자를 멈추면 나중에 경쟁력을 아예 잃을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기업은 시장변화를 반영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미국에 배터리를 대량 공급할 대안이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며 “동시에 정부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제고할 재정지원과 세제혜택 등 마중물을 주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취임사 내용 관련해 “발표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향후 영향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 다른 관계자도 “(IRA 축소나 폐지) 정책이 어느 수준에서 진행될지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며 “배터리 생산 거점 등 공급망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선 트럼프가 IRA를 전면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경우 공화당 강세 주와 연관성이 커서 내부 반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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