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2.6만명… 전체 비중 15% 달해
주력 재테크 수단인 부동산 침체 ‘직격탄’
토지·건물 등 경매 매물, 1년새 61% ↑
“고령층 경제난 대변… 안전망 보완해야”
소상공인 최저임금도 못 벌어 고통 심화
2023년 월소득 100만원 미만 900만명
“2025년도 민생경제 한파… 추경 편성 시급”
대구광역시 동구에 거주 중인 자영업자 이모(65)씨는 이번 설 연휴가 겁이 난다. 곧 태어날 손주를 생각하며 설레야 할 명절이지만, 최근 어려워진 경기 탓에 운영하던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지역은행에서 빌렸던 채무는 갚지 못해 하나 있는 집도 결국 경매로 넘어갔다. 3차례 유찰된 이씨의 아파트는 시가의 절반에 낙찰됐고, 은행 빚을 갚고 나서도 여전히 1억원이 넘는 채무를 갚아야 한다.
현재 개인파산을 준비 중인 이씨는 “설 연휴에 서울에 있는 자녀들이 내려오는데 이 상황을 알려야 할지 아내와 상의하고 있다”며 “도와준 건 없어도 아이들에게 손만큼은 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이 나이에 새롭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새해의 첫날인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빈곤’에 시달리는 부모들는 웃지 못하고 있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채무조정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빚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 절차를 밟는 60대 이상 채무조정 확정자는 2020년 1만4210명에서 지난해 2만5949명으로 82.6% 늘었는데, 이는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고령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장기 채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인워크아웃 확정자는 9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자영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은 고물가와 고금리 위기 속에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같은 당 정일영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엔 월 100만원도 못 번 개인사업자가 900만명에 달했다. 내수경기 부진과 국내외 정치적 불안정성이 확대하는 올해,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부진에… 작년 채무조정 17.5만명 ‘역대 최대’
이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빚을 못 갚아 채무조정(신용 회복) 절차를 밟는 60대 이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다른 연령층과 비교하면 증가율은 두드러진다.
26일 신용회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채무조정 확정자가 82.6% 증가하는 동안 같은 기간 20대는 54.8% 증가했고 30대는 46.7%, 40대는 43.1%, 50대는 46.9% 증가했다. 전체 채무조정 확정자 중 60대 이상 비중도 2020∼2023년 12∼13% 수준이었다가 지난해 14.84%까지 불어났다. 생활고 등으로 빚을 갚기 어려워 상환 기간 연장과 이자율 조정, 채무감면을 신청한 60대와 70대가 80% 이상 증가했다는 의미다.
전체 채무조정 확정자 수도 17만4841명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채무조정 확정자 수는 2020∼2022년 11만∼12만명 수준을 유지해 오다가 고금리·고물가 충격에 2023년 16만명대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증가세가 유지됐다. 장기 채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인워크아웃 확정자는 지난해 9만3366명으로, 처음으로 9만명대를 돌파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율(2023년 55.5%)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경기악화로 인한 고금리, 고물가는 60대 이상 가구에 직격탄이 됐다. 60대 이상은 지난해 큰 상승을 보였던 가상화폐와 미국 증시 투자에서 소외됐고, 주력 재테크 수단이었던 부동산은 지방을 중심으로 떨어져 회복할 기미가 없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에 60대 이상 연령층의 유일한 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경매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12만9703건으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이강일 의원은 “60대 이상 채무조정 확정자가 급증한 현상은 고령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금융 정책을 마련해 사회적 안전망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령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소상공인들의 고통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최저임금 월 환산액 201만원에도 못 미치는, 월 100만원도 못 번 개인사업자가 900만명을 돌파했다. 이날 정일영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연간 0원의 소득, 즉 ‘소득 없음’을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105만5024명, 12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816만5161명에 달했다. 월수입 100만원 미만인 개인사업자가 전체 개인사업자의 약 75.7%를 차지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보다 더욱 악화한 상황이다. 2019년 연 소득 1200만원 미만(월 100만원 미만) 개인사업자는 610만8751명이었지만 4년 만에 311만1434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린 연 6000만원 이상 소득을 신고한 사업자도 0.2%포인트 줄면서 소비 침체와 내수 부진 등 한국 경제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줬다.
정 의원은 “내수경기 부진과 국내외 정치적 불안정성 확대로 민생경제 한파는 더욱 매서울 것”이라며 “소비 침체와 내수 부진을 타개하고 골목 상권을 살릴 수 있도록 추경안 편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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