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나라였다. 그런데 제7대 임금 세조(世祖)는 ‘수양대군’으로 불리던 왕자 시절부터 불교에 심취했다. 세조의 아버지는 조선은 물론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리더로 꼽히는 세종대왕이다. 그 세종의 부인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소헌(昭憲)왕후가 별세했을 때 세조는 너무나 슬픈 나머지 불교 서적에 빠져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47년 그가 석가모니의 생애와 주요 설법을 뽑아 한글(당시 훈민정음)로 편역한 서적이 바로 ‘석보상절’(釋譜詳節)이다. 부왕인 세종은 아들이 지은 석보상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몸소 한글로 찬불가를 써 내려갔는데 이들을 모은 책자가 그 유명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세조는 즉위 이후인 1459년 ‘월인석보’를 펴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친 것으로,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로 나온 한국어 불교 경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조가 왜 월인석보를 편찬했는지를 두고선 논란이 있다. 1457년 장남인 의경(懿敬)세자가 19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이를 애통하게 여긴 세조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기획한 사업의 일환이란 것이 정설로 통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직 수양대군이던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정권을 잡고 1455년에는 조카인 단종(端宗)마저 내치며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다수의 인재들을 학살한 세조가 손에 묻힌 피를 씻으려고 벌인 일종의 참회 의식이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총 25권으로 편찬된 월인석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18권뿐으로 1983년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대 초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부산저축은행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검찰이 당시 부산저축은행장을 구속하고 그의 소장품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월인석보 9·10권이 발견됐다.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자산을 잃은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검찰은 2015년 월인석보를 경매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한글로 된 첫 불교 경전이자 보물이란 가치 때문에 가격이 얼마나 치솟을지에 이목이 쏠렸다. 경매 결과 7억3000만원을 써낸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이 낙찰을 받아 이 귀중한 국가유산을 소장하게 되었다.
1일 국립한글박물관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휴관에 들어간 박물관은 증축 공사를 실시한 뒤 오는 10월 재개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사 현장에서 철근을 자르기 위한 용접 작업 도중 불티가 인화물질에 튀며 대형 화재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 3, 4층 전시 공간이 전소된 가운데 1층 수장고는 무사했지만 박물관 측은 만일에 대비해 그곳에 보관 중이던 월인석보를 황급히 인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정조(正祖) 임금의 한글 편지 등 다른 보물 8건과 함께였다. 2019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무너져 내린 것이 떠올라 그저 아찔할 따름이다. 당국은 이번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재발을 막는 한편 소중한 국가유산의 보호 대책도 완벽하게 세워 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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