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자유 보장돼야” VS “사측 승인 있어야”
온라인 ‘좌표찍기’ 위협…마트노조, 경찰 고발
일부 대형 마트 직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배지를 달고 근무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신상 털기’에 나서 논란이다. “정치적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전 승인 없이 매장 내 정치적 입장을 담은 부착물 착용을 금지하는 회사도 있는 만큼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마트노조는 온라인 ‘좌표 찍기’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 등에 따르면 마트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윤석열 탄핵’이라고 적힌 둥근 배지를 근무복 가슴 위치에 부착한 채 근무하는 ‘배지 시위’에 돌입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등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 마트에 항의 전화를 하도록 요청하거나 항의 전화를 했음을 인증하는 글이 100건 이상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작성자는 “관련된 직원들을 다 자르기 전까지 불매운동을 계속하겠다”며 “항의 전화도 계속해서 관련 직원들을 언제 해고하느냐고 계속 따져야겠다”고 썼다.
배지를 착용한 마트 노동자의 얼굴 사진과 매장 전화번호 공개 등 이른바 ‘좌표 찍기’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매장에서는 ‘부정선거’ 망토를 걸친 윤 대통령 지지자가 돌아다니며 직접 배지를 착용한 노동자를 색출하려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준경 마트노조 조직국장은 “노조 간부의 신상정보를 캐낸 뒤 매장 고객센터에 전화해 ‘이곳에 근무하는 것이 맞느냐’는 식으로 물어봤다는 제보가 지속적으로 오고 있다”며 “많은 조합원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사 고객센터나 현장에서도 소비자 항의가 이어지자 일부 마트는 배지 시위에 동참한 이들에게 “사내에서 정치 활동을 중단해달라. 유니폼에 불필요한 부착물을 붙이고 근무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트 관계자는 “근무 시간 외 개인적으로 하는 정치 활동은 물론 자유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근무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행위는 금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트노조는 홈플러스뿐 아니라 이마트, 롯데마트, 코스트코, 이케아, 하이마트 등 곳곳에서 운동을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이들은 지난해 12월13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1만 마트노조 조합원 윤석열 탄핵 버튼 부착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일상에서부터 탄핵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의무휴업을 무력화시켰다며 “우리의 일요일을 빼앗아갔다”고 토로했다.
당시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일부 유통 기업들을 향해 마트노조 측은 ‘노무제공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버튼 착용을 방해하지 말 것’과 ‘버튼 부착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마트 노동자들이 단체 정치 행동에 나선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와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당시에도 마트노조는 이에 동참한다는 취지의 배지를 달아 사측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킬 때도 마트 노동자들은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조건으로 탄핵 촛불에 적극 참여하는 건 어려웠으나 탄핵 버튼을 달고 국민들과 함께 투쟁했다”며 “윤석열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비상계엄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트노조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 괴롭힘을 가한 성명불상의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을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로 고발했다.
공윤란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서울본부장은 “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일터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언제 나를 찍을까’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떤다”고 토로했다.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도 “판사도 잡아 족치겠다던 저들이 언제 어디서 위험한 행동을 벌일지 모른다”며 “반드시 철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지 부착 운동은 헌법재판소 판결로 윤 대통령 탄핵이 최종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었으나, 위협이 이어지자 이날부터 잠정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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