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신라 태자 ‘동궁’ 터, 월지 서편 아닌 동편”

입력 : 2025-02-07 06:00:00 수정 : 2025-02-06 20:47:52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국가유산청, 실제 위치 첫 확인
“왼쪽 건물 터, 왕 공간으로 봐야”

“동궁(東宮)을 짓고 처음으로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정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제7권 679년 8월 기록)

신라는 676년(문무왕 16년) 삼국을 통일한 뒤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인다. 궁궐을 웅장하게 고치고 왕위에 오를 태자가 머무는 동궁도 건립한다. 이 동궁의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신라 태자의 공간으로 알려진 동궁이 월지의 서편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월지 동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Ⅱ-나 지구 월지 출수구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6일 “신라 태자의 공간으로 알려진 동궁이 그동안 알려졌던 것처럼 월지(月池·옛 명칭은 안압지)의 서편에 있는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월지 동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월지의 왼쪽, 즉 Ⅰ-가 지구 일대가 동궁 터라고 여겨왔다. 1975년부터 약 2년간 월지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679년을 의미하는 ‘의봉 4년(儀鳳四年)’을 새긴 기와가 나왔고, 동궁을 연결할 만한 여러 유물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신라 왕성이었던 경주 월성(月城)의 동쪽에 있다는 점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발굴 조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면서 월지의 동쪽이 신라 태자가 정무를 보거나 기거했던 장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측은 “월지 동편에서 규모가 큰 건물터 흔적이 발견됐고,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처음으로 확인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간의 조사 성과를 종합하면 월지 동편은 태자를 위해 조성한 별도 공간으로 추정된다. 연구소 측은 월지의 동쪽 즉, Ⅱ-나 지구로 분류된 일대에서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건물과 넓은 마당 시설, 정원 안에 있는 연못(園池·원지) 흔적을 찾아냈다. 현재 남아 있는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취)를 고려하면 중심 건물은 정면 5칸(약 25m), 측면 4칸(약 21.9m) 규모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월지 동편 건물터를 동궁으로 보고, 당초 동궁으로 추정했던 서편 건물터를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당대 토목 기술이 집약된 동궁의 흔적이 확인되면서 향후 유적 정비와 보존 관리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유산청은 2014년부터 신라 왕경(王京·수도)의 핵심유적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하고 있다. 핵심유적은 2019년 제정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한 월성,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 14곳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영애 '상큼 발랄'
  • 이영애 '상큼 발랄'
  • 고아라 '매력적인 미소'
  • 아이브 장원영 '깜찍한 브이'
  • 아이브 안유진 '심쿵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