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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는 뭘 해줬나” 김정은, 트럼프에 배신감… 더 ‘달콤한 당근’ 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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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08 11:00:00 수정 : 2025-02-08 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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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6년 전 친서에서 격정 토로
“날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바보로…
인민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이번엔 더 철저히 반대급부 따질 것
안보불안 없도록 美와 공조 강화해야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 (…) 내가 돌아온 것을 그가 반기리라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달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2018∼2019년의 드라마를 재연해보자는 ‘러브콜’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이 발언을 보고받았을 김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 말마따나 그의 복귀에 흡족해했을까요?

 

2019년 6월 30일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위원장은 속내가 복잡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억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 장문의 편지입니다.

 

전·현직 미국 특파원 모임인 한미클럽이 2022년 9월 계간지 한미저널을 통해 공개한 ‘트럼프-김정은 러브레터’ 27통 중 마지막 편지로, 김 위원장은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 위원장이 직접 밝혔습니다. 한·미 연합훈련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이 편지를 작성한 2019년 8월 5일은 한국과 미국이 2주간의 연합훈련에 돌입한 날입니다. 

 

당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판문점 회동을 가진지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으로, 북·미는 실무회담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양국 실무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연합 군사 훈련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연합훈련이 실시되자 김 위원장은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회동을 앞둔 시점에 우리가 위협으로 간주하는 전쟁 연습을 벌이는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실무회담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 하나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편지에서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에게 쌓였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각하께서 해주신 것이 무엇이며, 저는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조치가 완화됐습니까, 우리나라의 대외 환경이 개선됐습니까? 군사 훈련이 중단됐습니까?”

 

또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디딤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쓰라린 배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할 말이 없다며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토로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고, 북·미 정상회담도 더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핸들을 정반대로 꺾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9월 핵무력을 법제화하더니 2023년 10월에는 아예 헌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을 못 박아버린 것입니다. 비핵화 협상에 더는 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명한 셈입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2024년11월 21일 열린 무장장비(무기) 전시회 '국방 발전 2024' 개막식에서 앞으로 마주하게 될 안보 위협들에도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능력과 안전 담보를 확고히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다"며 국방력을 과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 위원장의 질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지난해 11월 무장장비전시회 개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다”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정책”이라고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다며 자신만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은 그 경험 때문에 대화 테이블에 섣불리 앉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회담장에 나가기 전 과거보다 더 확실한 반대급부를 약속받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신호에는 반응하지 않고 마치 북·미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듯한 대미 비난 논평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19년 실무회담 중단의 이유로 들었던 연합훈련을 비난하는 지난달 외무성 담화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 게 눈에 띕니다. 

 

올해 초 치러진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의 이름과 기간을 일일이 거론하며 비판해 북한이 연합훈련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대북 적대적 언행과 남한 내 전략무기 배치 중단을 요구하는 듯한 논평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러 동맹이라는 경제 제재 우회 수단을 확보한 북한이 당분간 시간을 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기조를 탐색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안보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부는 미국과의 대북정책 공조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과거의 경험을 딛고 또 한 번 세계를 들썩이게 할 수 있을지, 두 사람이 벌일 신경전이 우리의 안보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됩니다.

 

*참고자료

 

한미클럽, 한미저널 통권 10호

정욱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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