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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퇴사’ 편견 딛고… “육아·일 다 해냈죠” [뉴스 투데이]

입력 : 2025-02-23 19:06:19 수정 : 2025-02-23 22: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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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여성 첫 정년 맞는 김혜련 사무장

1988년 창립 멤버로 유일한 1기
육아휴직 후 복귀해 사무장 근무
36년간 각종 1호 기록 써내려가
“명예롭게 정년 맞이할 것” 강조

한국에서 여성 직장인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서비스직의 꽃’으로 추앙받던 항공사 스튜어디스(여성 캐빈 승무원)는 더더욱 그래야 했다.

 

이런 시대를 관통해 36년 동안 꿋꿋이 자리를 지켜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김혜련(59) 아시아나항공 수석 사무장을 20일 만났다. 그가 지금까지 아시아나기에서 보낸 시간은 약 1만9500시간이고, 이는 지구를 279바퀴 돈 거리와 맞먹는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 공채 1기 캐빈(기내) 승무원으로 입사해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김혜련 수석사무장이 20일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로비 A380 아시아나 항공기 대형 다이캐스트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아시아나항공이 취항을 시작한 1988년 창립 멤버로 입사한 그는 현재 유일한 1기 캐빈(기내)승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만난 김 사무장은 전날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와 다음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는 근무 일정 중 어렵게 시간을 낸 터였다.

 

여성이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김 사무장은 육아휴직 후 복직해 캐빈 매니저(사무장)로 처음 근무하는 등 여러 ‘1호’ 기록을 써왔다. 3년 전쯤 마지막 남성 동기마저 정년퇴직한 뒤 그는 홀로 1기 승무원으로 남았다.

 

김 사무장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아이는 자라고 엄마도 같이 자란다”며 “36년 동안 근무하면서 사직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마다 뭘 극복해야겠다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화해서 고민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제2 민간 항공사로 출발했다. 당시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은 미지의 영역이자 선망의 직업이었다. 원래 교직을 전공했던 김 사무장은 부푼 꿈을 안고 승무원에 지원해 약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김 사무장은 “상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외국 출장을 가면 친척들이 김포공항에 와서 꽃다발을 건네며 잘 다녀오라고 할 정도로 해외로 나가는 것이 드문 시기였다”며 “어떻게 하면 해외에 나가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답은 승무원이었다”고 회상했다.

 

승무원 채용, 승무원 교육훈련 교관, 승무원 관리, 평가검열 등 승무원 업무 전반을 다양하게 경험한 김 사무장은 기내 승무원으로서 현장에 다시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정규 항공편 근무는 왕복 3박4일의 비행 일정으로 짜이며, 현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이틀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튼튼한 체력 없이는 버텨내기 힘든 근무 환경이다. 그는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 한국시간을 잊고 그곳에 100% 맞춰서 산다”고 지금까지 큰 육체적 무리 없이 버틴 비결을 소개했다.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서비스직에 머물렀던 승무원에 대한 인식도 다양한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안전 책임자로서의 역할로 확대됐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미국 델타항공기가 착륙 도중 전복됐지만, 탑승자 80명 전원이 생존한 ‘기적’ 같은 상황에서 승무원의 역할은 더욱 빛났다. 당시 구조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뒤집힌 기내를 걸어 다니며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풀고 탈출할 것을 반복적으로 안내하는 모습이 담겼다.

 

김 사무장은 승무원으로서 보람 있던 순간을 묻자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최선의 조치를 취해 지상에 무사히 착륙했던 여러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장거리 노선 비행 중 딸과 함께 비행 중이던 90대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같이 있던 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며 “딸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급히 자동심장충격기(AED) 부착 등 응급조치를 하고 할머니 귀에 계속 얘기를 해드리자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인천공항까지 모셨다”고 회상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이 마무리되며 당분간 독립적인 자회사로 운영되다가 내년 말 통합 대한항공으로 새로 출범하게 된다. 구성원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한국에서 여성 승무원이 정년퇴직한 것은 김 사무장이 처음은 아니다. 아시아나보다 훨씬 먼저인 1969년 출범한 대한항공에는 정년을 채운 여성 승무원이 지금까지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 이제 새 항공사 이름을 새로 근무복에 새겨넣어야 하는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에게 처음 정년을 맞는 김 사무장의 조언과 메시지가 더욱 절실할 것으로 생각됐다.

 

김 사무장은 “캐빈승무원은 단 한 번도 같은 장소, 같은 손님, 같은 기상 상황 등에서 업무가 이루어지지 않고 늘 변화하는 상황에서 판단하고 최적의 선택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야 한다”며 “통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통합에서 오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배들은 통합 항공사 탄생으로 인해 과거보다 더 개선된 업무환경 및 복지 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함께 잘 준비해 전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는 항공사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장은 퇴직 후에도 현재와 크게 다름없이 해외 여행을 계속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사원 훈련 때 나의 업무 매뉴얼 앞장에 ‘CP(수석 사무장) 김혜련’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수석사무장으로서 명예롭게 정년을 맞이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늘 새롭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며 최선의 선택을 해가고 싶다”고 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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