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불패의 전우 관계로 발전되어 오늘날 자기의 생활력과 위력을 힘있게 떨치고 있다.”
지난 21일 러시아 국경일 ‘조국 수호자의 날’을 맞아 주북 러시아 대사관이 개최한 연회에 참석한 북한 노광철 국방상은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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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지난해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은 러시아와 북한이 밀월 관계를 맺었다는 의미다.
그 배경엔 북한군 파병이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돕고자 지난해 10월 1만1000여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병력 외에도 미사일과 화포, 포탄 등을 러시아에 대량 공급했다.
인명피해는 컸지만, 참전을 계기로 러시아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전술과 기술 발전을 추구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3년째로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글로벌 안보정세를 흔드는 효과도 거뒀다.
◆병력·무기 보내 전쟁 뒷받침한 北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를 지원해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러시아군은 강력한 화력으로 동부 돈바스에 우크라이나군을 압박했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양의 122·152㎜ 포탄과 122㎜ 로켓탄 등이 필요했는데, 북한이 각종 포탄을 지원하면서 러시아군 수요를 상당 부분 채워줬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러시아군이 쏜 포탄의 60%가 북한산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러시아군이 화력전을 펼칠 수 있도록 북한이 도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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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파병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또다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주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공세를 펼치던 러시아군을 본토로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때 북한군 1만1000여명이 쿠르스크주에 투입되면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파병과 더불어 중화기 지원도 늘었다. 한국 국방부는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장사정포 200여문과 상당량의 탄약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파괴했다고 밝힌 170㎜ 자주포 ‘곡산포’는 최대 60㎞까지 포탄을 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장 키릴로 부다노우는 북한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곡산포 120문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발사속도가 느리고 정확도가 낮지만, 대구경 자주포라는 점에서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240㎜ 다연장로켓과 불새-4 대전차미사일 등이 공급됐다.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지난해에 148발이 제공됐으며, 올해에도 이와 유사한 규모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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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피해, 빨라진 발전
쿠르스크주에 투입된 북한군 주력은 적진 침투 및 교란에 특화된 폭풍군단이다. 뛰어난 체력과 지구력을 갖췄고 소형 무기 운용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군 제80공중강습여단 소속 유리 본다르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과 비교하면, 2022년 러시아 바그너 용병들은 어린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군의 새 전장이 기술·환경 측면에서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는 점이다. 북한군은 평원과 숲이 많은 쿠르스크에서 드론을 앞세워 정찰과 공격을 퍼붓는 우크라이나군의 움직임에 직면했다.
북한군의 피해는 계속 늘어났고, 2차 세계대전 방식의 돌격 작전을 펼치다가 4000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미 전쟁연구소(ISW)가 “(북한군이) 전술을 바꾸지 않으면 4월까지 1만1000명 규모의 북한군이 전멸할 것”이라고 예측할 정도였다. 북한군이 지난달쯤 전선에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북한군은 막대한 피해를 대가로 얻은 교훈을 활용, 전술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미 ISW는 “북한군이 10~15명의 소규모 그룹으로 다시 전투에 참여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이 타격하기 힘들도록 분산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론이 광범위하게 쓰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북한군이 귀국해서 동료들과 전쟁 경험을 공유한다면, 한반도에서 북한군의 현대전 수행 능력은 한층 높아진다.
무기 기술도 향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예전에는 표적을 1∼3㎞ 정도 빗나갈 정도 정확도가 낮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부터는 50∼100m 정도로 오차가 줄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제 표적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미사일 유도체계 등의 기술을 개선하고 운용요원 숙련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러시아와 기술 협력을 통해 여러 종류의 드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드론이 결합된 현대 보병전술, 실전을 거치면서 향상된 미사일 기술,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이 반영된 러시아 드론 기술 등이 북한에 유입된다면,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군에게 상당한 위협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립전략연구소의 알리나 흐리첸코 애널리스트는 23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보낸 기고문에서 “러시아 파병은 북한군 전쟁사상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장 환경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했다”며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이 ‘이웃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역량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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