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 권한 주장
국회의원 끌어내기·체포 지시 부인
곽종근 발언·홍장원 체포 명단 메모
野에 포섭된 내란·탄핵 공작설 제기
계엄 포고령 김용현 주도, 관련 부인
‘부정선거 체크’ 선관위 병력 파견 인정
방청객 1868명 몰려… 경쟁률 93대 1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출석해 이렇게 밝혔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받지 못했다”고 밝히자 이에 고무된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윤 대통령이 그간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한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탄핵 정국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3∼8차 변론과 10차 변론 등 총 7차례 변론에서 드러난 윤 대통령의 인식은 25일 11차 변론의 최후 의견 진술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11차 변론엔 일반인 1868명이 온라인으로 방청을 신청해 93.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명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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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끌어내라고 한 적 없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변론에 직접 출석한 것은 지난달 21일 3차 변론 때부터다. 윤 대통령은 재판부가 ‘국헌문란’ 관련 질문을 내놓자 부인에 부인을 거듭했다. 특히 ‘국회 대체 비상입법기구 마련을 위한 예산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건을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전달했느냐’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질문에 “준 적도 없고, (쪽지) 내용 자체가 모순된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의원을 끌어내란 지시가 있었느냐’는 문 대행 질문에도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5차 변론기일, 이 전 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부인하거나 소극적인 답변만 내놓자 윤 대통령은 ‘호수 위 달 그림자’ 발언을 하며 ‘주요 인사 동향 파악용’이라는 주장을 폈다. 체포 지시가 있었다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언에는 자질을 문제 삼았고, 같은 증언을 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는 “사람이란 표현을 놔두고 의원이면 의원이지,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홍 전 차장에게는 정치적 중립성 등 자질 문제를 제기하고, 곽 전 사령관을 향해서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 유튜브 출연을 문제 삼으며 ‘내란·탄핵 공작설’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은 10차 변론에서 여 전 사령관이 말한 ‘명단’과 관련해 “저도 그 부분은 불필요했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홍 전 차장 메모는 저와 통화한 것을 갖고 체포 지시와 연결한 내란 탄핵 공작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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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써 온 포고령… 예상보다 빨리 끝난 계엄”
윤 대통령은 4일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직접 신문하며 포고문 작성 책임자가 김 전 장관이란 취지의 주장을 폈다. 포고문 1항인 국회의원의 정치 활동 금지는 국헌문란 폭동과 연결되는 만큼, 윤 대통령이 관련 혐의를 부인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12월 1일 또는 2일 밤에 우리 장관께서 관저에 가져오신 거로 기억된다”며 “집행 가능성은 없지만 상징적 의미로 그냥 포고령 문구를 놔두자고 말했고, 전공의 내용도 이야기하니 계고 측면이라 해서 그냥 두자 했는데 혹시 기억이 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말씀하시니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실무급 장교들이 반민주적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으로 전제해서 소수 병력 이동지시를 내린 것”이라며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이 ‘경고성·단기성’ 계엄이었다는 주장이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 이동지시를 내린 것은 자신이라고 밝히면서도 ‘부정선거 팩트 체크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국정원에서 3차례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 결과를 보고받았는데 많이 부실하고 엉터리였다”며 “평소 의문 가졌던 것을 나중에 국정조사 등을 통해 봐야겠다 해서 군을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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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이 대통령실 놀러 왔겠냐”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절차적 하자 여부다.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일 국무위원이 모인 것은 간담회 수준이지, 안건·회의록·부서(서명)가 없는 국무회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까지 국무위원 의결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고, 보안이 필요한 ‘통치 행위’를 위해 안건 상정은 사후에라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증인신문을 한 7차 변론에서 비상계엄 직전 대통령집무실에서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계엄 이퀄(=) 내란 프레임으로 자꾸 누르니 일부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가 아니었다고 답변한 것 같다”며 “그럼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실에 놀러 왔다는 것인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실체적으로 흠결이 있었다”면서도 국무회의로 간주할지 여부는 사법부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윤 대통령은 7차 변론에선 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줄탄핵, 예산 폭거, 특검은 헌법상 국회 권한인데 정말 경고성이라면 경고하면 될 일이었다”고 하자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르는 후속 조치도 엄연히 헌법상 대통령 권한”이라고 맞받았다. 윤 대통령은 “체포나 누굴 끌어내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질서 유지하러 간 군인이 시민에 폭행당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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