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혁(59)이 집필한 대하 판타지소설 ‘퇴마록’을 사랑한 올드팬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수작으로, ‘퇴마록’의 세계관과 친숙하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불친절한 입문서로 기억될 것 같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21일 개봉한 영화 ‘퇴마록’(포스터) 얘기다.
‘레드슈즈’(2019),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2024)로 이름을 알린 국내 제작사 로커스스튜디오가 만든 ‘퇴마록’은 실물감을 극대화하는 실사 텍스처 방식이 아니라 만화적 터치를 내세우는 카툰 렌더링 기술을 사용했다. 그 만화적 비현실성이 퇴마록의 세계관과 맞아떨어져 쾌감을 선사한다. 캐릭터 디자인은 호쾌하고, 작화는 세밀하며, 액션 시퀀스는 역동적이다.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세기말의 격변과 불안을 기저에 깔고 전개되던 원작과 달리, 영화의 시간대는 동시대로 옮겨왔다. 주인공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GS25 편의점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30년을 뛰어넘었지만, 시대착오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옷을 덧입은 고유의 세계관은 여전히 싱싱하다.
문제는 서사다. ‘엑소시즘 연대기: 더 비기닝(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이라는 영어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퇴마록’이라는 독보적 IP(지식재산권)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국내·세계·혼세·말세편으로 확장된 방대한 원작 세계관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 주역인 퇴마사 캐릭터 4명을 소개해야 할 사명을 지닌 것이다.
보여주고 설명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영화의 호흡은 성기고 때로 툭툭 끊긴다. 원작의 핵심 캐릭터인 ‘승희’는 영화 전반부에 잠깐 얼굴을 비출 뿐 작품의 핵심 사건인 해동밀교 서사에는 등장도 안 한다. 이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쿠키(부록) 영상이 있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영화 러닝타임(85분)이 퇴마록 세계관의 서막을 알리는 예고편처럼 사용됐는데, 독립적인 극장 개봉용 영화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빈틈이 많다. 당초 24부작 시리즈로 기획된 작품을 영화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단이었을지 모르나,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캐릭터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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