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어제 현행 헌법에선 감사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직무감찰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 법원, 헌재처럼 독립 헌법기관인 선관위도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했다.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면 선관위의 공정성·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되고, 대통령 등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선관위를 독립 헌법기관으로 규정한 헌법에 반한다는 취지다.
이번 판단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12·12 대국민 담화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면서 “선관위가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국가정보원의 시스템 점검을 거부하다가 대규모 채용부정 사건이 터지자 한 발 물러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판단은 독립 헌법기관 동의 없는 국정원의 시스템 점검이나, 군투입 자체가 위헌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상 권한쟁의 심판의 최종 판단 권한은 헌재에 있다. 헌정수호 차원에서 헌재 판단에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제 생선가게 고양이는 어떻게 감시하느냐이다. 감사원이 헌재 결정 직전에 공개한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보고서를 보면 썩은 비린내가 진동한다. 선관위 전현직 간부, 직원들이 벌인 가족·친척 채용 청탁, 면접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 추잡한 비리 백태를 보면 충격적이다. 전 사무총장(장관급)은 아들의 8급 지역선관위 공무원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전 사무차장(차관급)은 딸의 경력직 공무원 채용추천을 부탁했다. 선관위 내부에서 “친인척 채용은 전통” “선관위는 가족회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어처구니가 없다. 외부의 국회 국정감사는 소리만 요란하지 엉성하고, 수사기관 수사도 사후약방문이다. 감사원의 직무감찰 감시망에서 벗어난 이상, 제2의 아빠찬스, 제2의 채용비리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선관위 비리가 터질 때마다 이번 판단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
이번 판단은 헌법의 허점을 보여준다. 개헌 논의가 이뤄지면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감사원과 선관위의 위상 문제도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이 수반인 행정부 아래 감사원을 그대로 둘지, 국회로 이관하거나 독립 헌법기관화할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직무감찰은 어떻게 할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