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이 비상이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3% 준 96억달러로 집계돼 1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작년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이어진 100억달러 이상 수출 기록도 중단됐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달 이후로 예고한 관세 부과를 앞두고 벌써 반도체 수출이 고꾸라진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전체 수출의 16%가량 차지하는 반도체의 부진은 계절적 비수기에 더해 미·중 무역전쟁과 맞물려 나타난 만큼 심각성을 더한다. 시장 역시 일시적인 악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 10%를 물린 데 이어 오늘부터 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 여파로 미국의 정보기술(IT) 제품 소비가 위축되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게 자명하다. 더구나 미국이 우리 반도체에 부과할 ‘관세 폭탄’이 미칠 대미 수출 감소 파장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범용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 업체가 자국 등에선 물량 공세로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악재가 한둘이 아니다.
기업이 앞장서고 정부와 정치권이 힘과 지혜를 보태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먼저 업계는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수요가 큰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DR5, LPDDR5, GDDR7 등 경쟁력이 입증된 고부가가치 제품의 시장을 넓혀 악재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규제 완화로 뒷받침해야 하는 정부와 국회는 그간 제 역할을 했는지 반성해보길 바란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할 예정인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1기 팹(Fab·반도체 공장)은 목표보다 3년이 미뤄진 지난달 25일에서야 착공했다. 2019년 2월 계획 발표 후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 등 규제로 허송세월했다. 경쟁자인 대만 TSMC는 반도체산업 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일본 정부의 지원 아래 2022년 구마모토 1공장을 발표 6개월 만에 착공했고, 이후 3년 만인 작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여야가 대립 중인 반도체특별법의 핵심 쟁점인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규제도 시급히 매듭지어야 한다. 정치권이 당장 합의에 이를 수 없다면 적어도 사용자 측을 상대로 노조가 동등한 교섭권을 행사하는 대기업에 한해 노사 자율로 규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대안도 나온다. 더는 골든타임을 허비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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