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시 카프카에스크(Kafkaesque)가 찾아왔다. 줄곧 평화로웠는데. 불안, 좌절, 고독, 혼란, 고통이 담을 넘어 내 방으로 침입해 왔다. 나는 얼른 문을 꼭꼭 닫아걸었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아, 싫다. 이 불안, 이 고통, 이 우울! 카프카적 감정과 연관된 것은 모두 싫다. 프라하엔 지금 눈이 내릴까, 비가 내릴까,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처럼 짙은 안개가 내려 아무도, 아무것도 안 보였음 좋겠다. 이럴 땐 아무도 안 만나야 한다. 나는 두 개의 약속을 취소하고, 파카를 걸치고 산으로 간다. 곧 봄이 오기 전에 겨울 숲이나 더 많이 밟고, 구겨진 가슴에 잔뜩 찬바람을 몰아넣자. 인간관계에서 오는 모욕을 삭히는 데는 춥고 스산한 바람만 한 약이 없다. 그 속에서 쓰디쓴 블랙 유머를 찾아내자.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그 방향을 억지로라도 바꿔놓자.
연두색 선희를 생각하자. 곧 나올 선희의 시집 ‘소소한 고집’을 생각하자. 봄날의 연두에 번지는 미소. 그 어여쁜 양선희를 생각하자. 그녀의 아름답고 선한 ‘소소한 고집’에 잠깐 나를 기대자.

이 좋은 친구를 두고 새로운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다니. 이 나이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친해지고 싶어 연연했다니, 정말 큰 실수였다. 이 나이에 금기 중의 금기를 깨뜨려 최악의 쪼잔함으로 썩은 동아줄을 잡으려 했다니!
오랫동안 혼자였던 사람은 혼자일 때가 더 좋다. 혼자 있음으로 이뤄낸 생. 그 생을 아픈 브로치처럼 달고 그냥 살자. 선희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소소한 고집, 그 빛나는 고집대로 살자. 그 고집은 아무리 부딪히고 부딪쳐도 금 가는 일이 없잖은가. 봄날의 연두처럼 싱그러운 선희. 그녀를 생각하니 기운이 상승하고, 카프카에스크에도 따스한 미소가 스며든다.
모든 걸 뒤로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초심을 잃는 걸 가장 싫어하면서도 그 초심을 잃을 뻔했다. 삶이 나를 향해 미소 짓지 않아도 무조건 내가 먼저 삶을 향해 크게 미소 지으며, 무너지고 깨어지면서도 사회적 장벽을 하나하나 뛰어넘던 그 시절,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4번은 얼마나 독창적이고 아름다웠던가.
곧 영춘화가 피리라. 그 영춘화를 따라 정수와 현석이랑 맛난 밥을 먹고 뜨거운 차를 마시자. 사람은 언제나 오래된 사람이 좋고, 달콤한 봄바람은 언제나 도취한 그 우정을, 그 최선을 활짝 꽃피게 그냥 두리라.
아, 봄이 온다. 봄날이 온다. 온 세상이 그 생동 기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선연한 매혹을 당분간 내 마음으로 삼자. 그 안에서 훨훨 예쁜 나비들이 하나둘 날아오를 때까지!
김상미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