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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내성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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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10 23:11:27 수정 : 2025-03-10 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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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당신과 만나지 못한 날이었지

 

집으로 돌아와

들고 간 꽃다발을 생수병에 담가놓았다

 

방은 좀 더 분주해졌고

꽃을 볼 때마다 전해줄 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투명한 생수병 물이 줄어들어

꽃은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방안에 향기가 가득했다

가구가 하나 더 는 셈이다

 

계절은 돌아볼 때만 선명했다

 

몇 번의 약속이 있었고

그 말을 하지 못했지만

오래 간직하는 기억은 오해여도 좋았다

 

(하략)

거실 구석에 놓인 화병을 본다. 노란 프리지어 다발이 꽂힌 병. 나는 괜스레 서둘러 화병의 물을 간다. 새 물을 들이켜서인지 꽃의 향은 불쑥 짙어진다.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듯. 어쩌다 꽃 앞에 이런저런 속말을 늘어놓게 되는 것은 시들어가는 중에도 좀처럼 체념하지 않는 특유의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내게 꽃을 전한 이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꽃을 전하는 마음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다. 어떤 꽃은 전하는 사람의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전하지 못한 꽃을 붙들고 전하지 못한 말을 조심조심 털어놓는 사람의 표정이 시 속에 선하다. 꽃이 다 시들도록 반복하는 일. 시들고 또 시드는 일. ‘당신’에게 가야 할 말은 영영 닿지 못하고 다만 내 마음 깊은 곳에 차곡히 쌓여간다. 어떤 ‘내성(內省)’. 그런 사랑의 방식. 물론 또 다른 의미의 ‘내성(耐性)’도 있다. 환경의 변화를 견디는 성질. 그런 끈질김.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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