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을 거쳐 간 인물들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낯익은 이는 이회창 그리고 김황식일 것이다. 두 사람은 현직 대법관에서 감사원장으로 이동하고, 또 감사원장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로 승진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회창은 총리를 그만둔 뒤 정치인으로 변신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도 3번이나 후보로 출마했지만 끝내 대권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김황식 역시 잠시 정계에 몸담았으나 ‘나와 어울리는 곳이 아니구나’ 싶었던지 일찌감치 발을 뺐다. ‘정치인 이회창’의 인생 항로를 돌이켜보면 김황식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행정부 일부이자 대통령 아래에 있는 감사원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같은 독립 헌법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감사원법 제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해 감사원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역대 감사원장 가운데 감사원의 위상을 드높인 이로 지난 2022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승헌이 꼽힌다. 1998년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이듬해인 1999년 물러났다. 당시만 해도 감사원장 정년이 65세였기 때문이다. 한승헌은 “이래서야 감사원의 영(令)이 서겠느냐”며 DJ에게 감사원법 개정을 요청했다. 이로써 감사원장 정년도 대법원장, 헌재소장과 같은 70세로 상향됐다.
헌법은 감사원장에게 4년 임기를 보장했으나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회창이나 김황식처럼 감사원장 재직 도중 다른 자리로 영전한 경우는 논외로 쳐도 정권 교체 후 전임 정권이 임명한 감사원장을 새 정권이 꺼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노무현정부 말기인 2017년 연임한 전윤철 감사원장은 이듬해 이명박(MB)정부가 들어서자 임기를 3년6개월가량 남겨두고 물러났다. 2011년 MB가 발탁한 양건 감사원장도 2013년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뒤 6개월 만에 잔여 임기를 포기하고 그만뒀다. 자신을 감사원장으로 기용한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아 사직한 사례도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 감사원장 취임 후 약 3년6개월 만에 사표를 던진 최재형이 대표적이다.

최재해 현 감사원장은 문재인정부 말기인 2021년 11월 임명됐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과반 다수당인 국회는 2024년 12월 최 원장을 탄핵소추했다. 그가 윤석열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이전 과정의 비리 의혹 감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약 3개월 만인 13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 기각을 선고했고, 최 원장은 직무 정지가 풀려 모처럼 감사원 청사로 출근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가운데 헌재 결정에 따라 조기 대선이 실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최 원장을 상대로 탄핵보다 더한 온갖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 감사원장 집무실로 복귀하는 최 원장의 심기가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