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상미의감성엽서] 담양 ‘글을낳는집’에서

관련이슈 김상미의 감성엽서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3-18 23:31:30 수정 : 2025-03-18 23:31:29

인쇄 메일 url 공유 - +

시골 논두렁 길을 걷는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새들의 합창 소리가 은은히 귓바퀴를 간지럽힌다. 좋다. 참 좋다. 얼마 만에 보고 느끼는 지평선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논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논두렁 길을 혼자, 명랑명랑 산책하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나를 향해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마술(?) 묘기를 흩어졌다 뭉치며 보여주는 구름, 구름들.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처럼 나도 저 구름 속으로 녹아들고 싶다. 아님 존 러스킨처럼 저 구름들을 병에 담아 저장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 날 병뚜껑을 열면 그 안에서 파블로 카살스가 연주하는 첼로처럼 우아하고 유쾌하고 평화로운 멜로디가 줄줄 흘러나왔음 좋겠다.

지천으로 깔린 큰개불알꽃들이 보라색 별들처럼 환하게 반짝이며 까르르 웃고 있다. 봄날에 만나는 작고 작은 들꽃들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게 있을까. 서울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청정한 공기 속에 떠도는 수줍고 소박한 봄 내음들. 그 속에서 팔랑팔랑 날아오르는 범나비들. 곧 개나리, 목련, 벚꽃이 피어나리라. 천지가 하양, 빨강, 노랑, 보라, 분홍… 꽃들로 덮이리라.

봄이 오면 봄날이 오면 모든 것이 다시 새로워지고 젊어지고 아름다워지는데 인간들은,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잘난 사람들투성이다. 그것도 비슷비슷하게 잘나고, 비슷비슷하게 똑 부러지고, 비슷비슷하게 친절하고, 비슷비슷하게 세련되고, 비슷비슷하게 타산적이다. 그 때문인지 이젠 사람 모인 곳에 가면 정말 재미가 없다. 내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한데도 자신이,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특별한 존재라고 장황설을 늘어놓으며 설득하려 애쓴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이 비슷비슷한 것은 모두 가짜라고 말했거늘!

들어주고 또 듣는 척하는 것도 왠지 민망하여 슬며시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그 사이로 바짝 다가온 봄이 목련꽃을 터트리고 계속해서 다른 꽃들을 터트릴 만반의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즐겁고 따스한 봄 손끝이 계속해서 터트릴 봄꽃봉오리들만 보아도 이리 행복한 것을. 그 예쁜 것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들과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게 기쁘고, 그들처럼 나도 뼛속 깊이 자연이, 야생이 되고 싶어지는 것을! 어째서 인간만이 자연의 이 경이로운 순환에서 쏙 빠져 있는지, 그 때문에 나도 인간인지라 인간을, 사람 곁을 아주 못 떠나고 함께 어울려 잘 살려고 이처럼 애태우는지도!

오늘도 담양 ‘글을낳는집’ 창작촌 사모님은 꽃밭에 무언가를 심고 계신다. 어젯밤 세차게 어둠과 결투를 벌이던 꽃샘바람이 멎고, 쾌청한 날씨, 온화한 봄바람에 크로커스가 오므리고 있던 꽃잎을 활짝 펴고 있다. 제발 이 봄이 아름답기를, 어떤 집회도 없는 평화로운 나날로 이어지기를!

 

김상미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몽환적 눈빛'
  • 있지 유나 '몽환적 눈빛'
  • 박은빈 '화사한 미소'
  • 신현빈 '반가운 손인사'
  • 르세라핌 카즈하 '청순 대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