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다양한 각도에서 한강을 감상하는 편이다. 시간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도 한데, 지금은 자양역으로 이름이 바뀐 뚝섬유원지역과 건대입구 구간의 한강이 가장 예쁘다. 강 수면 위에 총집결한 듯한 햇살이 지하철 내부로 들어오면서 지하철 안은 순간적으로 그 크기가 확 줄어들면서 앞에 앉은 사람을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는 화장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잠들어 있는 뒷배경으로 수면과 햇빛이 밀착된 광활한 한강이 보인다.
얼마 전에 이 구간을 지날 때 한 젊은 승객이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를 읽고 있었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그 책을 당장 구입했고 한동안 그 책을 들고 다니며 읽었다. 하지만 다 읽지는 못했고, 책이 무거워 지금은 더는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도 그 순간의 이미지는 따뜻한 햇볕과 함께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된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냐고 묻는다고 치자, 물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요즘 프랑스의 사진작가 소피 칼의 사진과 책을 읽고 있다.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전파하거나, 반대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자신의 사적인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오는 방식의 그녀가 하는 사진 작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예전에 들고 다니던 무거운 캐논 카메라는 못 들고 다니지만 사진도 다시 찍어 보려고 한다. 한동안 사진이 시대에 뒤처진 장르라고 여겨졌지만 요즘은 사진이야말로 피사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면에서 가장 주체적인 예술 장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심플한 블랙 화이트 톤도 그립다. 오늘 오전, 유독 수심이 있어 보이는 한 승객의 얼굴 뒤로 지나가던 한강과 그의 얼굴을 기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 요즘 가장 힘든 일이 물어본다면? 그는 답을 할지, 한다면 뭐라고 답을 할지도 궁금했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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