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문제 당사국 뺀 채 좌지우지
韓, 동북아 평화 유지 역할 증명
강한 의지·숙련된 군사력 다져야
세계 각국이 트럼프 시대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2기보다 더욱 강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 든든한 여론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표어는 실은 “미국에 유리하게”라는 노골적인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다. 우리는 국제정치에서 트럼프 정부의 무도함을 우려하지만, 미국 국내정치에서 그 정도는 더욱 극심하다. 기존의 정치와 외교의 상식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트럼프 본인뿐 아니라 그 휘하에서 나오는 발언들도 매섭고도 감정적이다. J D 밴스 부통령은 유럽을 전쟁도 못해 봤다고 깎아내리며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으스댔다.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돌려달라던 프랑스 국회의원을 향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프랑스인들이 지금 독일어를 쓰지 않는 건 미국 덕분”이라며 되레 미국에 감사하라는 코멘트로 응답했다. 여태껏 가치와 명분을 내세우던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런 모습에 세계가 당황하고 있다. 변화에 고통받는 대표국이 우크라이나다. 지난 2월 28일 전쟁지원 대가로 광물 절반을 요구하는 미국에 저항하던 젤렌스키는 정상회담에서 쫓겨났고, 며칠 후 군사지원마저 끊겼다. 러시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쿠르스크를 공격했다. 러시아제 광케이블 자폭드론들은 전파방해를 뚫고 맹렬히 타격했고, 북한군은 엄청난 전사자를 감내하고 돌격했다. 다급해진 우크라이나가 3월 11일 미국의 ‘30일 휴전안’을 수락하고서야 무기 지원이 재개됐지만, 이틀 후 쿠르스크 공세의 거점도시인 수자는 러시아의 손으로 넘어갔다.
쿠르스크의 탈환을 눈에 앞둔 러시아는 이제서야 휴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푸틴의 휴전협상 상대는 젤렌스키가 아닌 트럼프였다. 3월 18일 트럼프는 30일간 휴전을 제안했지만, 푸틴은 제한적 휴전에만 동의했다. 이미 러시아는 빼앗긴 땅의 70%를 탈환했지만 완전히 수복한 후에야 휴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결정에 끌려다녀야만 했다. 자국의 운명을 강대국의 결정에 맡기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제 ‘우크라이나化(Ukrainization)’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2기 출범 후 첫 한·미 연합연습이 어제(20일) 종료되었다. “한·미의 철통같은 동맹은 지금까지 중 가장 강하다”는 클리셰가 반복되었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트럼프 1기인 2018년 연합연습을 중단하면서 4년간 한·미 군사동맹은 어려움을 맞이한 바 있다. 미·북 협상 국면이 되면 또다시 연습과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이 한반도 안에 갇혀 있기에 한국에만 유리하다는 인식이 결정의 근거가 될 것이다.
우리 안보의 우크라이나화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역할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동북아의 자유민주국가들 가운데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것이 대한민국이다. 굳이 유럽이나 중동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동북아의 평화 유지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인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북한 이외에 평화와 번영을 흔들려는 어떤 국가들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하여, 단순히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역내 평화에 기여할 능력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국방은 더욱 혁신해야 한다. 당장 이번 자유의 방패(FS) 연습에서 전투기 오폭과 무인기 충돌사고 등 평소에 상상하기 힘든 사건·사고들이 발생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의 기강해이라면서 사고수습에만 집중해온 것이 과거의 행태다. 오히려 낡고 뒤떨어진 절차만을 반복하며 실전적인 훈련연습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는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훈련을 늘림으로써 사고의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또한 우리가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들이 현대와 미래전에 맞는지 재확인할 때다. 미국의 존중 속에 우리를 지키기 위해 강한 국가 의지와 숙련된 군사력을 다질 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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