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파쇄기에 밀어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총애’하는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이 대외원조 기관 미국국제개발처(USAID) 해체를 추진하는 데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머스크는 외국 원조 자금 축소 등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며 최근 남수단을 방문한 경험담을 온라인에 올렸다. 크리스토프는 이미 HIV예방·치료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어머니에게서 HIV에 감염된 소년이 최근 약을 구하지 못해 숨지는 등 다수의 피해 사례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HIV 예방·치료를 위한 지원이 없다면 1년 안에 약 165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빈곤아동 밥줄 끊은 미 원조중단’(3월18일자·김범수 기자) 기사는 USAID 해체 수순에 따라 세계 각 국에서 진행돼온 인도적 지원 사업 중단 실태와 파장을 담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예산 자료에 따르면 USAID 프로그램 폐지로 삭감되는 국제 아동지원 예산 규모가 총 40억500만달러(약 5조83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정부 지지자들은 ‘혈세 낭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원조’라며 호응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의 배고픈 아이들을 전부 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원금 삭감·폐지 피해 현장을 찾았던 크리스토프도 인정한다. 그는 “USAID가 불완전하고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미국인 대부분이 국민 소득 100달러 중 24센트를 지원해 전 세계 배고픈 아이들과 병든 고아들 생명을 구하는 모습을 분명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했다.

◆빈곤·보건 위기 덮친 저개발국
지원금 축소 및 폐지는 취약계층의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은 규모의 예산이 삭감되는 부분은 취약 지역의 어머니와 자녀 보건 지원 정책(1조2500억원)이며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동들에 대한 기본 교육 프로그램 예산도 9700억원 정도 사라진다. 남수단,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국제 지원에 의존하는 최빈국은 이번 조치로 국민총소득의 3% 이상 감소할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식량 부족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내달부터 내전에 시달리는 미얀마에서 100만명 이상이 식량 지원을 받지못한다. WFP뿐 아니라 역시 미국 자금 지원에 기대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도 결핵 퇴치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확산될 우려도 제기된다. 아프리카 전역의 실험실에서 위험한 병원균이 방치되고, 공항 등 검문소에서 전염병 감염 검사가 중단되는 등 검역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홍역을 치른 지구촌이 다시 전염병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한때 ‘구호’ 대상이었다
미국발 USAID 해체 여파는 남의 나라 일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도 한때 USAID 도움을 받은 ‘구호’ 대상국이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의 원조가 없었다면 빠른 시간내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로 도약하기 힘들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전후복구계획이 수립됐는데 하나는 유엔의 이름으로, 다른 한나는 한미간 상호안전보장법에 근거해 이뤄졌다. 사실상 원조의 주체는 미국이었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은 각국으로부터 갹출한 7000만달러 기금을 1차적으로 식량, 교통·통신시설과 같은 인프라 복구 등에 투입했다.

1970년대 서울, 부산에 AID 아파트를 짓도록 차관을 빌려준 곳도 USAID다. 한국의 주요 산업시설, 의료시설, 교육 시설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가 1945년 광복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원조 액수는 127억 달러. 현재 가치로는 약 600억달러로 70조원이 넘는다. 1995년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원조받는 나라’에서 벗어났다. ‘원조하는 나라’로 위상이 달라진 건 2009년 11월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다.
트럼프 정부의 USAID 해체는 최빈국 취약계층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저개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그것이 세계 정세에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우리가 겪었듯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연결돼있고 어느 한쪽의 빈곤·보건 위기가 그곳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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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gye.com/newsView/2025031751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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