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방에 ‘공부 잘하는 약’의 대명사로 ‘총명탕’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 궁중의였던 공정현이 창안했다고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에서는 총명탕이 다망(多忘: 건망증)을 치료하고 장복하면 하루에 1000마디를 외울 수 있다고 소개한다. 총명탕이 기억력을 감퇴시킨 흰쥐의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유의성 있게 회복시킨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 논문을 통해 보고된 바 있다. 한때 학부모 사이에서 수험생 자녀에게 꼭 챙겨 먹여야 할 필수 아이템으로 주목받은 적도 있다. 학습 능력을 올려주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저절로 성적을 올려주는 약은 아니다.
현대 의학에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일명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는 의료용 마약류인 ‘메틸페니데이트’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가 차분해지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된 향정신성의약품이라 복용에 신중해야 한다. 미국에선 메틸페니데이트 약물이 ‘스터디드러그(Study-drug)’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집중력 높이는 약’ ‘공부 잘하는 약’ ‘머리 좋아지는 약’ 등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ADHD 치료제 처방 환자가 급증했다. 지난해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는 33만8000명으로 전년(28만1000명)보다 무려 40.4%(5만7000명) 증가했다. 10대 이하가 전체의 45.3%에 달한다는 게 우려스럽다. 대치동 일대 소아·청소년 정신과 병원에 수개월에서 1년 치 예약이 꽉 차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ADHD 치료제는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ADHD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약으로 시험 성적을 올렸다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우리 주변에 ADHD 환자가 순식간에 이렇게 늘었는지는 의문이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신경세포가 도파민을 재흡수하는 것을 막아 뇌 속에 도파민 농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집중력을 높여준다. 다만 치료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공부를 잘하게 해준다는 식으로 오인돼 복용하는 건 위험하다.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두통·불면증 등 부작용을 동반하고, 자칫 환각과 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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