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서 반정부 활동 뒤 투옥
석방 후 1994년 韓에 첫 발 디뎌
2002년 ‘재한줌머인연대’ 창설
소수민족 탄압·학살 실상 알려
14년째 김포 센터 소속돼 활동
이주민 인권 보호·복지에 앞장
“한국 사회에 정착한 모든 이주민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구성원입니다. 이들 모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차별없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경기 김포시 외국인주민지원센터 소속으로 지역 내 이주민들의 인권 보호와 복지 증진에 앞장서고 있는 로넬 차크마 나니(Ronel Chakma Nani·54)씨는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동남아시아인 외모적 특징인 다소 검은 피부가 두드러졌지만, 한국어는 막힘이 없어 그야말로 유창했다. 3일 양촌읍 센터에서 만나 건네받은 그의 명함에는 ‘로넬(이나니)’이란 이름에, 상담팀장 직함이 적혀 있었다.

“2011년 대한민국의 이름 문화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국적을 취득했어요. 이후 개명하러 법원에 들렀는데 유명인들이나 지인들 중 많았던 이(李)씨 성에, 부모님이 지은 별칭 ‘나니’를 더했어요.”
이 팀장은 “당시 가정법원 직원이 어디 이씨로 기입하겠냐고 물었고, 오래 지낸 곳이 김포라 ‘김포 이씨’라고 선뜻 답했다”며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고 밝게 웃었다.
한국과 인연은 31년 전인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팀장은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1억7000만명)의 0.7%밖에 안 되는 11개 소수민족을 합쳐 부르는, 줌머(Jumma)인이다. 그렇다 보니 98%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민족인 벵갈인 및 정부로부터 줄곧 인종·종교적 차별, 재산 약탈 등의 핍박을 받았다고 했다. 이 팀장은 “줌머인의 자치권은 지금도 보장되지 않고 갈수록 훼손 중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산악 지역인 치타공으로 숨었고, 반정부 운동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가 정부에 대항해 게릴라군이 된 나이대는 10대 중반이었다. 빼앗긴 자유를 찾기 위해 평화군으로 활동하다 1986년 정부군에 체포됐고, 3년간 모진 수감생활을 겪었다. 이 팀장은 “당시 끔찍한 고문도 당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석방 뒤 1994년 제3국을 거쳐 피난길에 올랐다. 현지 정보기관 감시를 피해 해외로 나가 줌머인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긴 여정의 출발이었다. 이 시기는 ‘한국 방문의 해’라 비자가 필요하지 않았고, 한국 불교에도 평소 관심도 컸다. 그렇게 1994년 6월 여름 김포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국내 줌머인들과의 교류가 차츰 늘어나던 2002년 이 팀장은 ‘재한줌머인연대’를 공식 탄생시켰다. 이 조직은 한국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을 지원하며,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벌어지는 탄압·학살의 실체를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이 팀장은 2004년 난민으로 인정된 데 이어 2011년 한국인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 이곳 센터에 배치됐다. 이 팀장은 “한국 장기체류 외국인 인구는 약 260만명으로 추산되며 증가 추세에 있다”면서 “김포에만 2만4000여명의 등록 외국인이 거주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주민들과 소통하며 이들의 어려움 해소에 더해 보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동분서주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지내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다. 이 팀장은 무엇보다 따가운 시선이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토로한다. 그는 “상담 대부분이 고용주에게서 인격적으로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는 사례들”이라며 “외국인들의 안정되지 못한 신분을 악용한 임금 체불, 폭행·협박 등 인권 침해는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팀장은 과거 줌머인으로 겪었던 차별, 대한민국 정착까지 우여곡절과 인권운동가 활동 등 그의 인생을 돌아본 책 ‘치타공 언덕 바르기, 한국을 날다’를 2023년 펴냈다. 제목에서 ‘바르기’는 줌머인으로 통칭되지만 그의 본래 민족인 차크마족 전설의 새다. 바르기는 아이를 재울 때 불러주는 동요에도 나오는데, 이 새의 등장으로 평화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다. 전쟁이나 갈등 없이 평온한 조국의 미래를 꿈꾸는 이 팀장의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이 팀장은 “나는 소수민족에서 난민, 다시 한국인이자 김포 이씨가 됐고, 줌머 친구들은 김·박·강·하씨로 살아간다”면서 “줌머 2세들이 많은 소수자와 더불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이 날갯짓할 날을 그려본다”고 밝은 미래를 그렸다.
이 팀장이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김포시는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상호문화주의’ 선도 도시로 활동 중이다. 내국인과 외국인 주민 간의 소통으로 정서적 이해를 이끌어내 서로 벽을 허물고 있다. 2022년 11월 제6대에 이어 7대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장으로 선출된 김병수 김포시장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간 다문화정책 소통의 교량으로 역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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