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인류/ 백승만/ 히포크라테스/ 1만8000원
1889년 샤를-에두아르 브라운-세카르는 개 한 마리의 고환에서 혈액과 정액을 채취한 후 둘을 섞었다. 이어 개의 고환을 잘라내 으깨고 여과해서 혈액과 정액 혼합액에 추가한 뒤 이를 자신의 몸에 주입했다. 그는 이런 실험을 기니피그(피실험동물 ‘모르모트’)로도 9차례나 반복한 후 학회장에 나타나 선언했다. “회춘에 성공했다”고. 주사를 맞은 후 4∼5시간씩 실험해도 거뜬하고 소변 시간도 길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브라운 세카르의 영약(Elixir)’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100년이 흐른 후 호주에서 사람의 몸에 주입하는 비윤리적 실험 대신 테스토르테론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브라운 세카르의 영약 효과를 검증했다. 결론은 “효과 없다”였다. 그의 주장은 ‘플라시보 효과(좋아질 것이란 기대로 증상이 호전되는 효과)’로 결론났다.

브라운 세카르의 경악스러운 ‘인체 실험’과 유사한 실험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20년대에는 원숭이나 양, 사슴 등의 고환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성과는 1930년대에 나왔다. 아돌프 부테난트와 레오폴트 루지치카가 연이어 테스토스테론을 추출한 뒤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 체육계에서 ‘도핑 스캔들’이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스테로이드가 이 테스토스테론이다.
신간 ‘스테로이드 인류’는 스테로이드 발견과 약물 개발의 역사가 가진 부끄러운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한다.
사실 스테로이드는 하나의 상품이나 물질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프로게스테론·에스트로겐 등 여성 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한 남성 호르몬, 부신피질 호르몬 등 ‘스테롤(Sterol)을 닮은 구조의 화합물’을 통칭하는 용어다.
스테로이드는 일부에게는 삶의 희망이 됐다. 염증을 치료하는 스테로이드인 부신피질 호르몬 코르티손이 탁월한 효과를 보이면서 이전에는 치료가 어려웠던 천식·뒤센 근이영양증과 궤양성 대장염 등 환자들은 열광했다. 이들에게 스테로이드는 ‘기적의 치료제’였던 셈이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몸이 망가지던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안겨준 것도 프로게스테론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만 스테로이드는 ‘양날의 검’이다. 스테로이드 과용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도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테로이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환상으로 인한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여성 호르몬이 줄어드는 폐경기에 많은 여성이 골다공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스트로겐 약물을 사용한다. 문제는 잘못 사용하면 유방의 세포 분열을 촉진해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남성 호르몬 역시 마찬가지다. 근육량 및 성 기능 향상을 위해 남성 호르몬제를 사용하지만, 전립선비대증이나 전립선암이 악화할 수도 있을뿐더러 극단적으로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우리 몸의 시스템이 작동하며 테스토스테론이 아예 말라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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