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러시아 경제 제재 동참 요구도 거부
일각선 “EU 대신 러와의 연합 원한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이 어려워질 것”이란 EU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는 5월9일 러시아에서 열릴 전승절 열병식 참석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1945년 5월9일 나치 독일이 소련(현 러시아)에 항복하는 것으로 유럽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점을 기념해 매년 5월9일 성대한 행사를 연다. 올해는 80주년 전승절인 만큼 우방국 정상들도 참여한 가운데 예년보다 큰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다.

1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부치치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개최될 전승절 열병식에 세르비아 군대가 참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웃나라인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서 열병식을 참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둘 다 미가입한 세르비아와 달리 슬로바키아는 EU 회원국인 동시에 나토 동맹국이다. 두 나라 모두 강한 우파 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가운데 친(親)러시아 정책을 펴고 있다.
러시아가 개최하는 전승절 열병식 참관은 곧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약 1만4000명의 병력까지 파병한 북한 역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 행사에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EU는 발끈하고 나섰다. EU 회원국인 슬로바키아는 그렇다 쳐도 EU 가입을 간절히 원하며 EU와 협상을 진행 중인 세르비아의 행태는 괘씸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전 에스토니아 총리인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신청한 잠재적인 신규 회원국이란 점을 지적하며 “EU와 협상을 진행 중인 어떤 후보국도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르비아 정부를 겨냥해 “EU 회원국이 지켜야 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경우 EU 가입의 꿈이 무산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세르비아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한 6개 구성국(세르비아·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북마케도니아) 가운데 하나다. 옛 유고 연방의 수도가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6개 구성국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역할을 했다. 동서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 이후인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 탈퇴와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가 이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며 유고 내전이 벌어졌다. 10년에 걸친 참혹한 내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다.
옛 유고 연방이 사라진 뒤에도 세르비아는 친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부치치 대통령은 “EU에 가입하고 싶거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라”는 EU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가 이끄는 집권당 인사들은 공공연히 “우리는 EU 대신 러시아와의 연합을 원한다”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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