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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선한 영향력을 길어 올린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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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8 00:06:07 수정 : 2025-04-18 0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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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to see is to believe)’라는 말이나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직접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현대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각을 중시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본다’는 행위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진실의 수호자, 객관적 사실의 전달자라는 특권적 위상을 유지해 온 배경에는 사실을 눈앞에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각적 증거 능력이 있다 할 것이다. 물론 그동안 다큐멘터리의 위상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있었다. 영상의 홍수 시대에 어그로를 끌기 위해 촬영 대상에게 더욱 혹독해지는 카메라는 말할 것 없고 인터넷 숏츠의 태반이 아예 AI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앞에서 진실의 고발자로서의 다큐멘터리의 위상은 참으로 초라해졌다. 다큐멘터리의 아우라가 붕괴된 현장에서 여전히 ‘진실의 카메라’는 가능하며 카메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어떤 태도로 카메라를 들고 있을까.

김현지 감독의 ‘어른 김장하’는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준다. 이 영화는 최근 퇴임하는 모 헌법 재판관이 김장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 재개봉까지 하게 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김장하 선생이다. 그는 수많은 학생을 후원한 장학사업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예술, 노동과 여성, 평등 문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선한 영향력으로 유명해진 독지가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상대로 번 돈이기에 사회에 환원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단순히 부유한 독지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랑이 될 법한 질문 앞에서 철저하게 침묵을 고수했다. 그런 그와 숨바꼭질하는 뻘쭘한 과정이 카메라에 담기면서 영화는 오히려 유머와 호기심으로 채워진다. 그를 둘러싼 미담은 그의 입이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그를 취재하는 김주완 기자의 카메라는 그 이야기들을 우회해서 형상화해 간다. 즉,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셈이다.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선생 김장하. 그리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숨바꼭질하듯 따라다니며 감동적 휴머니즘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기자 김주완. 젊은 시절 부패한 엘리트 계층의 악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던 투사형 기자였던 김주완은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치 않고 과거의 악은 새로운 얼굴로 바뀌어 다시 등장할 뿐인 현실에 좌절한다. 그러다 김장하 선생을 만나면서 이렇듯 선한 사람들의 행위를 알리는 것이 오히려 크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한 영향력의 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카메라는 김장하 선생이 진정으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자 참교육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남아있는 진정한 어른. 그 소중한 존재를 보면서 고맙고 기쁘고 안도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준 선한 영향력일 것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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