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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겐 해외출장 거짓말” 준강간미수로 구속된 전직 기자 [사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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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9 15:15:01 수정 : 2025-04-19 15: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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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는 아버지가 해외로 장기 출장 갔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달 9일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103호 법정. 술 취해 잠든 후배를 상대로 준 강간 미수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전직 기자 A(44)씨는 재판부에 선처를 구했다. A씨는 “평소 손가락질했던 범죄를 저질렀다. 죄를 뉘우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두려움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개를 떨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어 그는 “죄 없는 가족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게 됐다. 저로 인해 많은 걸 포기당한 딸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며 “아내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감당 못할 생활고까지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사회로 복귀해 가족들이 겪는 생활고를 해결하게 해 달라. 아이들 곁에서 함께 살게 해 달라”고 재차 선처를 구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12월23일 후배 기자인 B씨를 포함한 회사 동료들과 강원 원주시 한 캠핑장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A씨는 술에 취해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B씨에게 다가가 간음을 시도했다. 그러나 잠에서 깬 B씨가 “이건 아니에요”라고 소리치며 숙소 밖으로 도망치면서 미수에 그쳤다.

 

당시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던 B씨는 회사 내에서 A씨의 영향력이 상당하고, 이직하는 경우에도 상급자인 A씨의 평판조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신고를 망설였다. 신혼여행을 다녀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피해 사실을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알리기도 힘들었던 상태였다.

 

결국 B씨는 다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난 이후에야 A씨를 고소할 수 있었다.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A씨는 “사건 당시 숙소에서 피해자와 따로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피해자의 등이 보여 깨웠다”며 “피해자가 갑자기 ‘이건 아니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거나 성관계를 시도한 사실이 없다”며 “피해자가 사건 당시 만취해 피고인을 오해했거나 착각한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사건을 살핀 1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범행의 주요 부분에 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여기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꾸며내기 어려운 사항까지 포함되어 있다”며 “법정에서 실시된 증인신문 당시 피해자의 태도나 뉘앙스 등도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반면 피고인의 진술은 제출된 증거들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2021년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음에도 두 달 뒤 퇴사했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며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처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허위 사실을 진술해 피고인을 무고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또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사실도 없다”고 짚었다.

 

고소가 뒤늦게 제기돼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피고인 주장과 관련해선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네 입사 동기는 정규직 안 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널 버리려고 했을 때 나만 반대했다’, ‘너 기자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이는 회사 내 영향력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과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범행을 중단한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피고인은 항거불능인 직장 후배를 간음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가 엄벌을 틴원하고 있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시설에 3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은 사건은 1년 6개월이면 양형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번 사건에서 항소한 이유는 피해자가 그간 겪었던 고통이 너무 심했던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의 피해를 가중시켰다”며 “피해자는 1심에서 증인으로 나서면서까지 자신의 진술이 사실임을 밝혀야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피고인이 사건 이후에 했던 행위들은 양형을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아쉬움도 표현했다. 검찰은 “경찰은 처음부터 피해자가 퇴사한 이후에 몇 년이 지나 고소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편파적인 결론이 나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가 항소 이후에 사건을 보니, 피고인 진술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됐음에도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꼼꼼히 보지 않고 늦게 고소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신빙성을 계속 의심했다.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 피해자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구형과 같이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춘천지법 103호 법정에서 열린다.


춘천=배상철 기자 b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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