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가득찬 대도시에서의 삶
이주민·소시민들의 방황·좌절 그려

다독가이자 영화 애호가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매 연말 ‘올해의 영화·책·음악’ 목록을 각각 선정해 공개한다. 영화의 경우, 관념적 예술영화들보다는 지적으로 충만하며 서사 면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그의 취향인 듯하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포스터)은 지난해 ‘오바마 베스트10’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은메달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이지만, 난해함으로 관객을 잠들게 하는 ‘영화제용 영화’는 아니다. 인간성의 풍요로움을 확인시키는 평범한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다.
영화는 인도 뭄바이의 북적이는 밤거리를 비추며 시작한다.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로 온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나열되고, 화면에는 소시민들의 이미지가 담긴다. 다큐멘터리처럼 수많은 삶의 편린을 포착한 영화는 조심스레 픽션세계로 진입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뭄바이 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아누’(디비야 프라바)는 성격이 정반대인 룸메이트다. 분주한 병원의 베테랑 간호사인 프라바는 침착하며 현실적이고, 인도 남부에서 막 올라온 새내기 간호사 아누는 남자친구와의 사랑에 달떠 있어 그 외의 것들은 눈에 뵈지 않는다.
이들은 저마다의 난제에 시달린다. 프라바의 침착함은 독일로 일하러 간 뒤 연락이 끊겨버린 남편과의 불확실한 관계 때문에 크게 흔들린다. 힌두교도인 아누는 무슬림 청년과 비밀연애를 하는데,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사적인 공간이 없어 밤거리를 배회하며 좌절한다.
또 다른 인물, 병원의 요리사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재개발 대상지인 집에서 퇴거 위기에 놓였다. 얼마 전 사별한 그녀의 남편이 생전 거주권을 증명할 서류를 남기지 않아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서다.
흔히 꿈의 도시로 불리는 뭄바이는 이들에게 결코 안전한 집이 되어 주지 않는다. 불안으로 가득한 이 도시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가 외로워한다.
영화 후반부, 프라바와 아누는 고향으로 이사하는 파르바티의 짐을 들어주러 함께 시골 바닷가 마을로 떠난다. 화면이 도시를 벗어나자 영화를 채우던 소음은 사라지고 공기는 맑아진다. 영화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전환되고, 바다에서 낯선 남자를 구조한 프라바는 마법적 순간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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