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최근 공개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노 코멘트”라고 했다. 사실상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이 정지되면서 ‘한덕수 차출론’이 주춤해졌는데 한 대행이 다시 불씨를 살린 것이다. 공정한 대선 관리와 미국과의 통상 협상 등을 책임지고 있는 권한대행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안팎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권한대행이 정치 상황을 지켜보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할 만큼 한가한 시국이 아니다. 그런데 한 대행이 대선 출마와 관련해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연막만 피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행의 울산 조선업계 방문 같은 공식 일정조차 사전 선거운동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하고 있다. 또 다른 일정이나 대미 협상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한 대행의 모호한 행보가 부른 소모적 논란일 뿐이다.
한 대행은 어제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치권을 향해 “국익의 관점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당은 “노욕의 대통령 병자가 선거 관리와 대미 협상을 단 한시라도 제대로 하겠느냐”, “모호하게 출마설에 연기를 피우며 미국과의 관세 협상 전면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농락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 공세로만 볼 수 없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도 “탄핵당한 정부의 총리가 출마하는 건 극히 비상식”, “출마하고 싶다면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해 당당히 검증받아야 한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그렇지만 보수 진영에선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한 대행을 포함한 당 밖 주자들과 단일화를 추진하자는 주장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어제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믿는 자유 진영이 모두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한다. 오늘 국민의힘은 당의 문을 다시 활짝 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외부 인사 영입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대행이 마음속으로 이런 ‘빅 텐트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선 출마 결심이 섰다면 나라와 본인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결단해야 한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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