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공지 ‘수수료’ 사용 금지…자영업자 ‘울분’
“표현의 자유 침해·경영활동 간섭행위에 해당”

국내 배달 플랫폼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배민)이 포장 주문에 대해 6.8%의 수수료를 전면 부과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민을 이용하는 업주들은 포장 주문을 하는 고객에게 이런 사실조차 안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배민 앱의 가게 공지란에 ‘수수료’라는 단어가 금지어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수익 구조나 가격 정책을 설명하고자 하는 업주의 자율적인 안내가 사전에 차단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이 같은 제한이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경영활동 간섭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배민을 사용하는 업주들에 따르면,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업주들이 가게 정보와 원산지 등을 적을 수 있는 앱 내 가게 공지란에 수수료라는 단어를 금지어로 설정해놓고 있다. 공지 칸에 수수료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수수료’ 키워드는 입력할 수 없다”며 “다른 문구로 변경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뜬다.

앞서 14일부터 배민은 포장 주문 수수료를 전면 유료화했다. 배민 앱을 통해 포장 주문이 들어오면 업주들은 1건당 6.8%(부가세 별도)의 중개 수수료를 내야 한다. 지난해 7월 배민은 배달 중개 수수료 인상을 발표하면서 포장 주문 서비스도 일부 유료화한 바 있다. 올해 3월까지 신규 업주에게 포장 중개 수수료를 50% 할인해주고, 기존 업주에게는 포장 수수료를 면제해왔다.
업주 입장에선 추가로 내야 할 수수료가 늘어나면서 경영 부담이 커지게 됐다. 결국 포장 음식 가격에도 수수료를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사유를 설명하려 해도 공지문에 수수료라는 단어 기재조차 불가한 실정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샐러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려고 해도 금기어라는 이유로 막혀버린다. 사실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냐”라며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하는 건 현장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일부 업주들 사이에선 ‘수SU료’, ‘仐仐료’, ‘soosoo료’ 등 우회 표현을 사용해 공지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러나 업주 B씨는 “이렇게 적어놔도 배민이 찾아서 강제로 삭제하거나 바꾼다”고 털어놨다. 강남구에서 외식업을 하는 C씨도 “고객들이 이런 내용을 알아야 합리적으로 주문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데 정보 제공을 막아버리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배민은 업주의 가게 소개 지면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 배민의 배민외식업광장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화주문이나 계좌이체 결제 유도, 음란물·사회적 이슈를 조장할 수 있는 게시물 등 앱 운영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은 금칙어로 규정돼 입력이 제한된다. 배민은 자세한 금칙어 설명을 공개하진 않고 있다.
배민 관계자는 “가게 소개란은 말 그대로 가게를 알리기 위한 공간인데 전화주문을 유도해 수수료를 피해가려고 하거나 추가로 배달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가게 소개와 관계없는 정보는 작성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소비자 안내 목적에 부합해 가게 홍보 등 본 목적과 다르게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 제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장 수수료는 이미 예전부터 안내 및 고지하고 있는 정책이었다”며 “이미 다른 업주들은 비용을 내면서 이용하고 있는데 그분들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수수료라는 단어 사용을 막는 것은 업주의 표현의 자유는 물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김영명 공정한플랫폼을위한사장협회 공동의장은 “수수료라는 단어가 개인 홍보와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그걸 판단하는 기준 없이 배민이 노출하기 싫은 단어를 사실상 아예 올리지 못하게 하면서 소비자를 위한 알림 공간도 통제하고 있다”며 “언론 보도나 매장 방문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소비자들께 알릴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배달 앱 3사는 지난해 11월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를 통해 수수료 표기를 개선하기로 했다. 소비자 영수증에 주문 금액에 대한 중개수수료, 결제수수료, 배달비 등의 상세 내역을 기재하는 것으로, 쿠팡이츠와 요기요는 각각 지난 2월과 4월 해당 내용을 반영했다. 그러나 배민은 오는 6월에서야 관련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배민의 영수증 수수료 표기 개선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업주의 자율적인 고지마저 제한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업주들의 경영활동에 간섭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주한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사장님이 안내란에 포장 수수료 부과 내용을 기재하고 소비자에게 알리는 행위는 업주의 정당한 경영활동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 활동 자체를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경영활동 간섭 금지에 반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배민의 반경쟁적 행위 금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은 “소상공인과 소비자 간의 소통 창구까지 통제하는 불공정 약관과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현행 자율 규제로는 갑질 약관을 바로잡기 어려워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통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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