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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명품을 사는 사이…누군가는 굶어죽어가고 있다

입력 : 2025-04-26 06:00:00 수정 : 2025-04-24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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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람들 사치·불필요한 소비할 때
지구 반대편선 극심한 가난·질병 시달려
소비 줄이면 빈곤 퇴치·생명 구할수 있어
무관심 극복 ‘효율적 이타주의’ 실행 주문
韓기부문화 7할이 개인… 취약성도 지적

빈곤해방/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21세기북스/ 2만2000원

 

당신은 아침 산책을 하러 공원을 지나고 있다. 평소처럼 조용한 아침이고 새들이 지저귀고 공원 연못의 물결은 잔잔한 평화로운 아침이다. 그 순간 당신의 눈에 작은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들어온다. 아이의 몸은 물에 절반쯤 잠겨 있고, 당장 구하지 않으면 익사할 것 같다. 연못은 얕고, 당신은 수영을 잘한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 비싼 구두와 옷을 입고 있다는 것. 연못에 들어가면 옷은 망가지고, 구두도 못 쓰게 된다.

매년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빈곤과 이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는 값비싼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삶의 질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명품 가방을 든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 보지는 못해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도덕적 의무라고 말한다. 사진은 명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 . 연합뉴스·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부분 주저 없이 말한다. “당연히 아이를 구한다. 옷은 다시 사면 된다”라고. 눈앞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비싼 옷이 젖는 게 아까워서 구하지 않는다면, “비도덕적”이란 비난을 받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선 아이. 연합뉴스·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우리는 비도덕적 행동을 하며 산다. 지구촌 빈곤에 대한 얘기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위급하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고 고작 몇만 원만으로 그들을 살릴 수 있지만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이자 세계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 단순한 예를 통해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 “물에 빠진 아이는 지금도 존재한다. 다만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서 없다고 느껴질 뿐”이라고.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21세기북스/ 2만2000원

신간 ‘빈곤해방’은 세계 빈곤 문제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실질적 기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원제도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 세계 빈곤을 끝내기 위해 행동하기(The Life You Can Save: Acting Now to End World Poverty)’다.

그의 논리는 도덕적 의무와 효과적 이타주의, 일상적 선택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요컨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듯 부유한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울 도덕적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고 가장 큰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자선’, 즉 효과적인 이타주의로 실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라리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에 모기장을 배포하는 일이 그렇다. 비교적 비용이 낮은 모기장만으로 말라리아에 따른 사망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기부금 대비 효과가 매우 큰 사례다. ‘산과 질환’도 마찬가지다. 빈곤 지역에서 산모들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분만 상황에서도 어쨌든 출산한다. 태아는 결국 사망하고, 산모 역시 높은 압력으로 방광·질·자궁 등이 뚫리는 손상을 입게 된다. 비교적 단순한 수술 한 번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빈곤 지역 여성들은 이를 받지 못해 평생 심각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지원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회복하는 가치가 있다.

저자는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자기 만족적인 기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효과나 효율에 대해 고려해보라는 지적이다. 어떤 단체는 대부분을 행정비나 홍보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투명성, 효과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종합해 신뢰할 수 있는 자선단체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빈곤 퇴치는 일상적인 소비에 대한 철학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무심코 혹은 습관적으로 선택하는 소비와 생활 방식에는 도덕적 의미가 내포됐다. 사치스러운 지출과 불필요한 소비는 한 개인의 기호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가능성의 소멸, 즉 ‘기회비용’에 대한 얘기다. 고급 커피, 외식, 최신 스마트폰, 명품 가방, 요트 등은 삶의 질을 향상하지 않지만 삶에 크게 불편을 미치지도 않는 지출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눈앞에서 물에 빠져 죽는 아이에게는 민감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즉 ‘도덕적 거리감’을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책은 2014년 처음 출간된 이후 너무 높은 윤리적 잣대로 부자들이 세계의 굶주림에 관심이 없다고 호도한다는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캠페인의 계기가 되는 등 결실을 보기도 했다.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나온 이번 개정판에는 최근 현황과 새로운 사례들이 추가됐다. 출간 이후 지난 10년간 전 세계의 극심한 빈곤을 줄이는 데 진전이 있었다. 초판에서 970만명(2009년 기준)이었던 5세 미만 아동의 연간 사망자 수가 개정판에서는 540만명(2019년 기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또 ‘1달러당 생명 구하기’ 같은 구체적 지표를 통해 기부 효과를 측정해 보여주고 ‘기브다이렉틀리(Give Directly)’ 같은 현금 직접 지원 프로그램의 성공사례도 소개한다.

한국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도 담겼다. 현재 한국의 기부문화는 양적 성장과 구조적 취약성이 공존하는 양상이다. 2023년 국내 기부금 총액이 16조원에 달하며 개인기부가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 기부자의 44.9%가 비영리단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와 세계기부지수(CAF2021) 110위에 그친 순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싱어 교수는 “지난 10년간 극심한 빈곤 감소에 큰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수백만 명이 하루 1.90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교양서가 아니다. 실천을 위한 행동지침서다. 책이 감동이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면, 책장을 덮으면서 할 일은 명확해진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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