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크름반도 포기 못해”
트럼프 “11년 전에 싸웠어야”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러시아에 점령당한 영토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종전 조건을 사실상 처음으로 공개 제시하며 압박에 나선 가운데 2014년부터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크름반도가 갈등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인도를 방문 중인 J D 밴스 부통령이 이날 우크라이나 종전안과 관련해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매우 분명한 제안을 했다”며 “이제 그들이 받아들일 때이며, 그게 아니라면 미국은 손을 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현재 소유한 영토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밴스 부통령이 거론한 종전 조건은 영토 경계를 현재대로 동결하고,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을 인정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이 그간 드러내지는 않고 러시아 편을 들던 것과 달리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유리한 종전 조건을 당국자 입으로 공식 제시한 것이라고 NYT는 짚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레믈궁 대변인은 “미국은 중재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매우 환영한다”며 즉각 긍정적인 입장을 즉각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크름반도 포기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민감하게 반응 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하루 전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 점령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율리야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장관도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만 항복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령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썼다.
크름반도는 1954년 구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넘긴 영토로 연방 해체 뒤에도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았으나, 러시아가 2014년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침략해 실효지배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유가 ‘불법 점령’이라고 지속적으로 호소해 왔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아온 만큼 종전의 대가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명분을 넘어 군사적, 경제적으로도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종전 이후에도 크름반도를 거점 삼아 우크라이나의 해상 무역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름반도는 이번 전쟁에서도 러시아의 후방 기지로 우크라이나에 큰 부담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크름반도를 내놓을 수 없다는 우크라이나를 직접 압박했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크름반도는 (종전협상에서) 논의의 초점조차 아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평화협상에 매우 해롭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크름반도를 원한다면 왜 11년 전에 그들은 (러시아에 맞서) 싸우지 않았는가. 왜 러시아에 (크름반도가) 넘어갈 때 총 한 발 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며 “젤렌스키의 발언과 같은 선동적인 발언으로 인해, 전쟁을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합의에 매우 가까이 와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 포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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