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내어줄 수는 없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전 계획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과 정상회담한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파트너들이 제안한 모든 것을 실행하겠다”며 “우리의 법률과 헌법에 위배되는 것만은 할 수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에 제안한 종전안의 핵심인 크림반도 이양에 대한 거부를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2014년 강제로 점령해 병합을 선언했으며 국제사회는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삼아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인들은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것은 자국 헌법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며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는 크림반도가 종전 협상에서 논의의 초점조차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가 협상 의제가 아니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러시아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앞서 외신들은 미국이 평화 협정을 위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인정 등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헌법 제2조는 주권이 ‘전 영토에 걸쳐’ 있으며, ‘현재의 국경 내에서는 분할할 수 없고 불가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상 영토로 간주하는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넘겨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지만, 계엄 상태인 우크라이나에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종전안이 과거 미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발표한 ‘크림반도 선언’을 들어 미국을 비판했다. 미국은 이 선언에서 “어떤 나라도 무력으로 다른 나라의 국경을 바꿀 수 없다”며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한 러시아가 ‘국제 원칙 기반’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난한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휴전 협상 성사를 위해서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는 “침공을 중단하거나 휴전에 동의하라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압박은 보지못했다”면서 협상 성사를 위해서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 협상에 나서도록 남아공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설득해주기를 바란다”며 “포괄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과 이를 위한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아공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만났을 때보다 진일보한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부 영토의 할양 등 다른 모든 문제는 일단 휴전협상을 시작한 뒤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상으로는 처음인 젤렌스키 대통령의 남아공 방문은 라마포사 대통령의 2023년 6월 우크라이나를 방문에 이은 답방이다. 당시 우크라이나전 종전 중재를 위한 ‘아프리카 평화 이니셔티브’에 따른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의 일원으로 2023년 6월 16일 우크라이나를 찾은 바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했다면서 “우크라이나 평화 프로세스를 논의하고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양한 양자 현안을 다루기 위해 곧 만나기로 합의했다”며 “양국 간 관계 개선의 필요성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전날 밤 키이우에서 최소 12명이 숨지고 90명 이상 다친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격을 이유로 정상회담 외 공식 일정을 단축하고 조기 귀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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