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두렵다”는 3년 전보다 3.6%p 증가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방지법) 시행 등 신종 범죄 대응이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회가 그만큼 제도적으로는 안전해지는 부분이 있지 않나…” (조용수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
“치안이랑 무관하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두렵다는 게 문제죠.”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여성가족부가 24일 발표한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여가부 측은 인식조사에서 사회안전도가 개선된 데 대해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추정했고, 전문가들은 입법 공백에 따른 폐해가 실태조사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2021년 처음 실시된 뒤 이번에 두 번째로 이뤄진 여성폭력 실태조사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만 19세 이상 여성 7027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에서 ‘일상 속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악화했고, ‘사회안전도’ 인식은 개선됐다.

◆여성 36% “한 번 이상 폭력 피해”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볼까 봐 느끼는 두려움’을 묻자 ‘두렵다’는 40.0%, ‘두렵지 않다’는 25.2%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인 2021년 대비 ‘두렵다’는 3.6%포인트 증가하고, ‘두렵지 않다’는 9.4%포인트 줄었다.
반면 ‘현재 우리 사회가 여성폭력 피해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문항에 ‘안전하다’는 응답은 29.0%로 3년 전보다 4.6%포인트 늘었다. ‘안전하지 않다’는 51.5%로 6.2%포인트 줄었다.
관계 기반 폭력 피해 경험은 증가했다. 가해자 유형이 배우자, 헤어진 배우자, 전·현 연인 등인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5명 중 1명꼴인 19.4%로 나타났다. 2021년(16.1%)보다 3.1%포인트 늘었다.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을 경험한 비율도 전체 응답자의 36.1%로 2021년(34.9%)보다 0.9%포인트 늘었다. 피해 당시 나이를 살펴보면 성적 폭력의 경우 20대가 44.4%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0.6%), 10대(18.9%) 순이었다.
‘2차 피해’도 빈번했다. 여성폭력 피해 경험자 중 32.2%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2차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유형은 ‘피해에 대한 사소화’(40.3%), ‘가해자와의 합의 및 화해·용서 권유 또는 종용’(18.3%), ‘타인에게 피해 발설’(17.7%) 순으로 집계됐다.

◆“법 개정 검토로는 부족해”
여가부는 인식조사에서 사회안전도가 개선된 데 관해 ‘법 제도 강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2023년 7월 스토킹 방지법이 새롭게 시행된 점 등이 그 예다. 다만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등 신종 범죄가 계속 생겨나 개인이 느끼는 두려움을 증가했다고 봤다.
여가부의 평가와 달리 법 제도가 아직도 허술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교제 폭력 경우 상당수가 반의사불벌죄인 폭행·협박 범죄로 다뤄져 처벌이 경미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폭행·협박 범죄로 다뤄지면 접근 금지 같은 분리조치도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허민숙 조사관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 폭력은 8만건을 넘어 2023년 7만7000건에서 급증했고, 그중 절반이 이상인 54.4%가 현장 종결됐다”며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인 피해자 입장에서 대질신문 등이 부담스럽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교제폭력의 입법 공백에 관해 국회와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용수 국장은 “현재 교제폭력 관련 법이 국회 발의가 많이 돼 있어 법사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며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법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허 조사관은 정부 인식이 여전히 안일해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여가부가 이날 발표한 ‘제2차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에 ‘스토킹 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으로 포섭되지 않는 폭력범죄에 피해자-가해자 신속 분리, 피해자 보호장치 등을 강화하기 위한 법령정비를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검토’로는 부족하단 것이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여가부의 예산 증액은 최근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원래는 82억원을 증액한다는 계획이었다.
허 조사관은 “계속 ‘노력하겠다’, ‘정비하겠다’고 하는데 허황한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여성이 위협에 처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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