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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 않고 뿌린다”…현지화로 진화하는 K방산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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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7 09:00:00 수정 : 2025-04-27 09: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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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둔 K방산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서서 현지에 거점을 확보하고 공동생산을 추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6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최대 민간 방산기업인 WB그룹과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텀시트(Term Sheet) 계약을 체결했다. 텀시트는 계약 관련 원칙과 조건을 명시한 합의서다.

 

육군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대에서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합작법인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51%, WB그룹 자회사인 WB 일렉트로닉스(WBE)가 49% 비율로 출자해 설립된다.

 

폴란드가 도입한 천무 다연장로켓에 쓸 사거리 80㎞짜리 CGR-080 현지생산과 유럽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르면 3년 안에 첫 생산품이 등장할 전망이다.

 

유도탄 생산과 폴란드군 납품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국이 개발한 천무 다연장로켓에 폴란드에서 만든 유도탄을 탑재해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깃발 아래에서 운용하는 형태가 완성된다.

 

K방산이 유럽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대목이다. K방산에 지속적인 수출 기회를 제공, 부가가치를 한층 높이는 효과도 있다.

 

◆유럽과 전략적 방산 동맹 효과

 

방산수출은 특정 지역에 무기를 판매한 뒤 타국의 진출을 막는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장비 및 서비스를 공급해 수십년 동안 부가가치를 얻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폴란드 젤츠의 중형전술트럭에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대를 탑재한 호마르-K. 천무의 폴란드 수출형이다. 젤츠 제공

이를 통해 체계종합을 담당하는 대기업과 부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견·중소기업이 함께 이익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기존의 K방산 수출은 완제품을 판매하는 일회성 수출 성격이 강했다. 단기간에 성과는 거뒀으나 지속적인 이익 창출은 기록하지 못했다.

 

1990년대 방글라데시에 판매한 호위함 방가반두함은 한국 최초의 군함 수출이었지만, 추가적인 수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방글라데시 시장을 중국에 내줬다. 말레이시아 K200 장갑차 판매도 후속 수출이 이어지지 못했다.

 

T-50 계열 항공기를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면서 후속 지원을 제작사가 담당하는 성과기반군수(PBL)를 구매국과 맺거나 성능개량 사업을 하는 등의 추가적인 이익 창출 사례가 나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안보·산업적 측면에서 독자적인 방위산업 기반을 구축하려는 기조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예전보다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갖춘 새 수출모델의 필요성 제기됐다. 바로 ‘현지화’다.

 

호마르-K 발사차량과 로켓 모형. 폴란드 국방부 제공

국산 무기를 구매한 국가에 공장 등의 생산 거점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해당 국가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상호 간에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 WB 그룹이 추진하는 CGR-080 유도탄 공동 생산은 단순한 무기 납품을 넘어선 모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군 규모를 확장하는 한편 미국과 한국 등에서 M-1·K-2 전차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국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작업도 지속하는 모양새다. 해외에서 구매한 무기에 자국산 시스템과 장비를 결합해서 자국 방위산업에 일감을 제공하고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가 도입한 천무 다연장로켓은 폴란드 젤츠의 8×8 중형전술트럭을 탑재하고 토파즈 시스템의 사격통제시스템을 개량한 호마르(HOMAR)-K다.

 

호마르-K에 쓰일 유도탄 모형. 천무 수출형은 다양한 사거리를 지닌 유도탄을 사용할 수 있다. 폴란드 국방부 제공

CGR-080의 현지 생산은 호마르-K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의미가 있다.

 

다연장로켓의 핵심은 탑재하는 탄이다. 탄의 성능과 생산 및 운송비에 따라 다연장로켓 위력과 가격 경쟁력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다연장로켓 체계의 총비용 중 탄이 차지하는 값이 전체의 90% 정도에 이른다.

 

한 번에 다수의 탄을 쏘기 때문에 소모량이 매우 많아서 사전에 탄을 대량으로 비축해야 한다. 탄을 자체 생산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수입에 의존하면 가격은 더욱 오르고 보급 주기도 길어져서 대량 비축이 어렵다.

 

이번 합작은 다연장로켓의 운용 제약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냉전 시절 옛소련 무기를 썼던 폴란드는 옛소련이 개발했던 122㎜ 로켓탄을 생산·운용한다. 전 세계에서 오랜 기간 사용된 로켓탄이지만, 하이마스(HIMARS·고기동성 로켓포병시스템)와 같은 서방 다연장로켓에는 탑재할 수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에서 천무 다연장로켓이 조립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천무 다연장로켓을 판매하면서 절충교역으로 122㎜ 로켓탄 탑재가 가능하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폴란드는 급한 불을 껐지만 공격 범위가 더욱 확대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성을 감안하면, 멀리 떨어진 표적들을 정밀타격하는 능력도 필수다.

 

CGR-080은 230㎜급 유도탄으로 사거리는 80㎞, 원형 공산 오차(CEP)는 15m 이하의 고정밀 유도 기능을 갖춘 무기다. 천무에는 최대 12발을 탑재한다.

 

수백개의 자탄을 탑재하는 지역제압용 유도탄과 수출·일반용 고폭파편 유도탄으로 구분되는데, 지역제압용은 축구장 3개 면적의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

 

발사대에서 쏘아올려져서 비행하다가 폭발하는 일반적인 로켓이 아닌 정밀 유도·비행제어·항법·추적 기능이 결합된 무기다.

 

이같은 첨단 유도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폴란드가 장기전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한화 부스에 전시된 천무 다연장로켓 유도탄 모형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나토와 발트3국을 유일하게 연결하는 육로이자 러시아와 가까운 수바우키 회랑을 끼고 있는 폴란드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유도탄 생산이 전략적 억지력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한국과 폴란드의 정치적 신뢰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정밀 유도무기 기술은 고도의 통제를 받는 핵심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공유하는 건 한국의 방위산업이 폴란드에 이식되는 것과도 같다. 사업적 거래를 넘어선 정치적 신뢰의 고도화가 가능한 이유다.

 

◆글로벌 체계로 진화하는 것은 필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한 K방산은 단순 제품 수출이 아닌 한국식 무기 생태계를 파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비롯한 국산 무기들이 폴란드 등에 대량으로 수출된 이유는 냉전 이후 위축됐던 유럽 방위산업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폭증한 무기 수요를 단기간 내 충족하기 어려웠던 것에 힘입은 바 컸다.

 

이로 인해 역내 국가간 ‘내부자 거래’가 활발했던 유럽 국가들은 관례를 깨고 한국과 미국에서 무기를 대량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 지난 3월 ‘방위태세 2030’ 등을 통해 재무장을 결정하고 4년간 8000억 유로를 투자해 안보 역량을 강화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무기 수출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폴란드에 수출될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대에서 CTM-290 전술유도탄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500억 유로 규모 공동대출 기금을 맡을 유럽안보활동(SAFE)은 탄약과 드론, 방공, 포병, 사이버 등의 무기를 공동으로 확충하는 역할을 한다. EU회원국 등의 조건이 있으며 비용의 65%를 해당 국가에서 생산해야 한다. 방위산업 분야에서 ‘바이 유러피안’ 기조가 뚜렷해지는 셈이다.

 

막대한 예산이 재무장에 투입되면 라인메탈(독일), 레오나르도(이탈리아), 탈레스(프랑스), 사브(스웨덴) 등 유럽 내 주요 방산업체들의 연구개발과 생산·마케팅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서 후속군수지원이 유리한 유럽 방산업체들이 자금과 기술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유럽 내 무기 거래 증가를 촉진한다.

 

한국도 EU의 재무장 전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CGR-080의 폴란드 현지 생산처럼 폴란드, 루마니아 등 역내 방산 협력국과의 협력을 통해 유럽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현지 업체와의 합작 등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면 EU의 역내 의무생산 비율을 맞출 수 있다.

 

유럽 방산업체의 경쟁 우위인 지리적 이점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는 유사시 한국에서 장비나 인력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빠른 현지 후속군수지원과 정비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K방산은 이제 완제품을 판매하기만 하는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제공하고, 구매국과 상생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K방산이 외교적 자산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 안보·국제정치적 변화에 맞춰 변신을 꾀하는 K방산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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