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후 각종 업무 담당하나 보상 열악
“수당 현실화, 대체휴무 대상 확대 등 필요”
“공직선거법상 지방자치단체장과 소속 공무원은 경로 행사와 공청회, 교양 강좌, 사업 설명회, 직능단체 모임,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 개최와 후원이 금지됩니다. 특히 4~5월 계절 특수성을 반영한 지역 축제와 행사를 대선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기초 지자체의 선거 사무 비중도 너무 높아요. 저희는 원래 하던 일에 이중의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선거 업무는 지자체 소관이 아닌데 말이죠.”

서울의 한 자치구 소속 공무원 A씨는 예상치 못한 조기 대선에 따른 지자체의 애로 사항을 이같이 토로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38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지방공무원, 기초 지자체 공무원들이다. 5월29∼30일 사전 투표와 6월3일 본투표, 개표 관리는 물론 선거 공보물 작업 전반, 투표소 설치·철거 등도 이들의 몫이다. 5월 초 ‘황금 연휴’는 먼 나라 얘기로, 선거 업무에 투입됐다가 과로사하기까지 한다.
26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지자체는 선거 국면에서 △투표 관리관, 투·개표 사무원 등 투·개표 관리 인력 지원 △투·개표소 등 선거 관련 시설·장소 제공 △선거인명부 작성 △투표 안내문 작성·발송 △기관 소유·관리 건물, 게시판 등에 대한 선거 벽보 첩부(발라서 붙임) 장소 사용 협조 △현수막 등 공명선거 홍보용 시설물 설치 지원 △투표용지 등 수송 시 차량 지원 업무를 맡는다. ‘관공서, 기타 공공기관은 선거 사무에 관해 선거관리위원회의 협조 요구를 받은 때 우선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제5조가 그 근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선거 공보물 접수에 발송도 지방공무원들이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읍·면·동 선관위에 지방공무원을 간사와 서기로 위촉해 선관위를 보좌하게 하고, 선거공보 업무를 읍·면·동 선관위의 사무, 즉 ‘대행 사무’로 지정하고 있어서다. 투표 안내문 업무도 대행 사무다.

박복환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부본부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업무를 자치구, 읍·면·동 공무원들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다음 달 4일엔 선거인명부 확인 작업을 해야 하고 (선거일 전) 한 달은 주말에 쉬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강서구지부장인 박 부본장은 이어 “강서구에서만 2일간 사전 투표, 본투표, 개표에 ‘선거 사무원’으로 차출되는 공무원 수를 계산해 보니 1850명 정도가 나오더라”면서 “그 외에 선거 공보물 작업, 투표소 설치·철거 등에 투입되는 인력은 제외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보상과 처우는 열악하다. 박 부본부장은 “본투표일 휴식도 없이 14시간 넘게 일하고도 중앙선관위에서 받는 수당, 사례금은 최저임금의 60%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은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전국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선거 공보물 작업의 경우 공무원은 일반인과 달리 초과 근무하는데도 사례금이 일반인(8만4620원)의 절반도 안 되는 4만원이다. 또 투표소 설치와 철거엔 2명씩 배정되는데, 이 인원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해 2∼3명이 더 동원되고 수당 8만원을 4∼5명이 분배한다고 한다.

대체 휴무 부여 대상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개정·시행된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 제4조의3(선거 관련 사무 수행 공무원의 휴무)이 신설돼 선거 관련 사무를 수행한 지방공무원은 선거일 다음 정상 근무일에 쉴 수 있게 됐다. 다만 그 대상이 사전 투표 관리관과 사무원, 투표 관리관·사무원, 개표 사무원으로 한정됐다. 선거 전반의 실무를 책임지는 읍·면·동 선관위 간사와 서기, 선거인명부를 작성하는 전산 담당 공무원, 지자체 본청에 설치하는 선거 상황실 담당자 등에겐 휴무일이 부여되지 않는 것.
이는 국가공무원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엔 ‘그 밖에 인사혁신처장이 정하는 선거 관련 사무를 수행한 공무원’도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이에 전국공무원노조는 올해 2월 중앙선관위에 선거 공보물 작업 대행 사무 지정 중단, 사례금 인상, 사전 투표 시간 단축, 투표소 설치·철거 인력 증원 등 19가지의 선거 사무 개선을 요구했다. 사전 투표는 본투표와 달리 전국 모든 투표소에서 할 수 있어 오전 6시가 아닌 오전 9시에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지난달 전국공무원노조에 “선거 공보·벽보 업무는 법적 처리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지자체 협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제와 연동한 공무원 선거 사무 종사자 수당 법제화는 장기 과제로 추진 중”이라면서 “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부본부장은 “선거 때 지방공무원 1∼2명이 과로사한다”면서 “중앙선관위가 현실에 맞는 선거 운영도, 제도 개선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적으로 지난해 4월5∼6일 제22대 총선 사전 투표에 동원됐던 전북 남원시청 50대 여성 공무원이 그다음 날 쓰러져 끝내 숨졌다. 이 공무원은 이틀 연속 오전 2시 기상해 오전 4시 투표소에 도착, 오후 8시까지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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